채송화
채송화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19.06.2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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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김용례 수필가

 

마당으로 나간 남편이 부른다. 무슨 일인가 싶어 얼른 나가 보았다. 채송화 꽃 세 송이가 피었다는 것이다. 고 작은 씨앗 어디에서 이렇게 맑은 색을 간직하고 있었을까. 처음 나온 분홍색 꽃잎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나를 빤히 바라본다.

이른 봄 흙을 한 차 받아 화단을 높였다. 작년에 안개꽃과 채송화가 피어 있었던 곳의 흙을 담아 두었다. 화단을 조성하고 지금 이 자리에 뿌렸다. 수선화, 튤립, 목단 등등 봄꽃 들이 피고 지는 사이 채송화는 잊고 있었다. 뒤늦게 흙 빛깔의 아주 작은 새싹이 나왔다. 채송화 씨앗이 거기 있었던 사실조차 까맣게 잊었다. 이미 피고 진 꽃들 사이에서 바글바글 나온 걸 보고서야 비로소 채송화 꽃을 생각했다. 작은 꽃이 귀엽고 만만해서 많이 심었다. 그리고 어릴 때 아버지와 함께 꽃밭을 만들며 심었던 추억 때문에 채송화를 고집하는지도 모르겠다. 여름 장마철에 비가 오고 나면 심지도 않은 두엄더미나 텃밭에 있는 채송화, 봉숭아를 꽃밭으로 옮겨 심었었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내 유년의 그림이다.

세상은 몇몇 거대한 국가, 잘난 사람들, 그들 중심으로 이끌어 가듯 정원을 가꾸는 일도 이와 같아서 큰 나무들이 중심을 잡는다. 나도 소나무 몇 그루를 심었다. 그 나무들이 잘못될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지지대를 세워 바람으로부터 뿌리를 보호 하기 위해 호들갑을 떨었다. 잘 가꾸어진 정원에 가보면 수령이 오래된 고 매화나 잘생긴 소나무가 정원의 품격을 나타낸다. 큰 나무와 작은 꽃들이 조화를 이뤄야 세상은 아름답다. 조연 없이 주인공이 빛나기는 쉽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채송화는 어디에 심어도 환경을 탓하거나 까탈을 떨지 않는다. 다만, 햇빛을 좋아한다. 비록 꽃다발을 만들어 누구에게 선물하거나 화려한 장식은 할 수 없지만, 꽃밭 맨 앞줄에서 그저 조용히 제 꽃잎을 피웠다 진다. 키 큰 나무를 시샘하거나 큰 꽃을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채송화의 꽃말이 천진난만, 순진, 가련함이란다. 욕심 많은 페르시아 여왕 때문에 가련함이란 꽃말이 붙었는지도 모르겠다. 채송화를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니 내 마음도 맑아졌다. 숙련된 작가의 글도 좋지만, 처음으로 글을 써본다는 백일장 응모자의 글 같다. 문장은 조금은 어설프지만, 진정성이 담겨 더 감동적인 것처럼. 채송화 같은 사람이 있다. 오늘 아침 햇감자로 국을 끓였더니 맛있더라는. 저녁엔 무엇을 해먹을까 걱정하는 일상의 따스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이웃집에 사는 그녀 같다. 다정다감하고 부담 없이 친밀하다.

하늘과 바람과 비의 이야기들을 이 작은 꽃잎은 간직할 것이다. 오직 근원의 힘으로 저런 빛깔을 낼 수 있었으리라. 존재의 확인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낮은 곳에서 다 함께 손잡고 가는 것이다. 누구나 주어진 자리에서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는 것은 끝없는 인내의 결실이다. 채송화는 초여름인 지금부터 피기 시작이다. 다리가 저리도록 오래 앉아 있었다. 커피 한잔 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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