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슈퍼마켓의 향수
동네 슈퍼마켓의 향수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7.22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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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정의 소비자 살롱
유현정 <충북대 소비자학과 교수>
   어렸을 적 동네 구멍가게에서는 콩나물을 시루째 가져다 놓고, 주인이 직접 물을 주어 기르면서 손님이 오면 주먹으로 대충 한 움큼씩 봉투에 담아 팔곤 했다.

어느 날인가 콩나물 심부름을 갔을때 "심심해서 콩나물 뿌리를 다듬었는데 괜찮아요"하고 묻던 구멍가게 딸의 모습이 떠오른다.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한 나는 그냥 받아들고 와서는 어머니께 외쳤다. "이거 언니가 손으로 다듬은 거라는데, 괜찮아요" 어머니는 "요즘 장사가 안되긴 안되나 보다. 애들이 앉아 콩나물을 다듬고 있는 걸 보면"하고 안타까워하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멍가게는 문을 닫고 말았다.

얼마 전부터 골목 어귀마다 세련된 간판과 인테리어로 장식한 상점들이 부쩍 늘어가고 있다. 일명 슈퍼슈퍼마켓이라 불리는 SSM이다. SSM이란 300~1000평으로 슈퍼마켓보다 크고 할인점보다는 작은 소매점을 이르는 말이다.

90년대 중반 유통시장이 개방되면서 우리를 찾아온 대형할인점은 IMF를 겪으며 가격을 중시하는 소비자니즈가 증가하면서 급속히 성장하였다. 2000년대 들어서는 백화점을 추월해 유통업체의 최대강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넓은 매장과 다양한 제품 구색은 물론 소비자의 오락적, 쾌락적 욕구까지를 충족시키며 새로운 소비문화공간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어느새 할인점은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부지매입에도 어려움을 느끼게 되면서 대형 할인점 업체들은 SSM이라는 새로운 시장의 확보에 열을 올리게 된 것이다.

이미 SSM이 들어선 지역은 예전 향수를 자아내던 동네 슈퍼마켓들이 하나씩 고사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기업형 슈퍼마켓에서는 더 싼 값으로 제품을 공급하면서도 훨씬 청결하고 세련된 매장을 유지할 수 있다.

더운 여름, 냉방도 더 쾌적하게 제공할 것이며, 많은 수의 직원들은 보다 친절한 미소로 손님을 맞을 것이다. 소비자는 어쩔 수 없이 경제인이다. 더 싸고 좋은 환경의 소매점을 찾는 것이 합리적인 소비자선택일 수밖에 없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우리의 옛 친구를 구제할 방법이, 효율성을 추구하는 현재의 사회에서는 없다.

그러나 한 번만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그들을 위한 무언가를 꼭 만들어내야 한다는 데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효율성에 의해 끊임없이 경쟁이 가속화 되는 사회가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형평성에 의해 모두의 행복이 조금이라도 커질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하자는 것이다.

다행히 일부 지역에서는 SSM 입점 계획을 철회하는 사례가 보도되었고, 각 지방자치의회에서는 조례를 통해 SSM 입점 제한기준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힘든 여름, 고단한 일이지만 조금만 견뎌주길 바란다. 그리고 소비자도 조금만 옛 단골의 우정을 지켜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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