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아도 보이는 빛의 정체를 밝혀라
눈 감아도 보이는 빛의 정체를 밝혀라
  • 김태선 충북자연과학교육원장
  • 승인 2024.05.08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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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김태선 충북자연과학교육원장
김태선 충북자연과학교육원장

 

십여 년 전인 것으로 기억된다.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먼지나 투명실 같은 것이 떠다녀서 앞을 보는데 불편을 느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지나치게 눈을 혹사했나?' 두 손으로 눈을 비벼보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오히려 눈을 감았을 때조차 나선무늬, 동글동글한 무늬들이 눈 속에서 돌아다니며 빛무리를 그렸다. 잠시 그대로 몇 분 지나자 괜찮아진 것 같다. `뭐야? 피곤했는가 보네….'

다음날 눈앞에 먼지 같은 것이 더 많이 떠다녔다. 어제보다 더 많이 나타난다. 덜컥 겁이 났다. 다시 눈을 비벼보았다. 어제처럼 눈을 감았는데도 빛 무늬가 보였다. 잠시 지나면 괜찮아지겠거니 했는데, 여전히 눈앞에는 먼지나 투명실 같은 것이 떠다닌다. 그 이후 고생하며 이곳저곳 병원 순례(?) 끝에 오른쪽 눈에 찾아온 `비문증'에 대한 레이저 치료로 이어졌다.

주로 고도 근시를 가진 사람들에게 자주 일어나는 일로, 망막에서 황반이 살짝 끝이 벗겨지면서 혈액이 유리체로 흘러나와 돌아다니게 되는데, 빛이 유리체를 통과하여 망막(황반)에 맺히고 사물을 인식하게 될 때, 부유하는 혈액이 우리 뇌에는 먼지나 투명실처럼 인식된다는 것이다. 이미 흘러나온 혈액은 어쩔 수 없지만, 황반이 벗겨져 계속 유리체로 흘러나오는 혈액은 지혈시켜주어야 했다. 눈을 깜빡거리지 못하게 고정시키고, 레이저로 눈 안쪽 부분을 지지는 주사를 대략 수십 대 정도 맞은 것 같다. 눈을 감지도 못하고 다 큰 어른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던 것을 회상하면 스스로 실소가 나온다.

이미 흘러나와 유리체에서 돌아다니는 혈액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서 평생 눈앞의 먼지나 투명한 실 같은 것은 감수하고 살아야 한다고 한다. 비문증이라는 이름도 마치 모기가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것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라나.

그런데 혹자들은 눈을 감아도 이런 모양이 보이는 것을 비문증에 의해 생기는 현상과 동일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어린 아기들은 종종 눈을 비비며 울기도 하는데, 눈을 비비면 비빌수록 잔상이 생기고 눈꺼풀 안에서 섬광이 펼쳐지기 때문에, 더 겁을 먹고 울어대기도 한다. 옛날 중세시대에 죄수들을 가두는 벌칙 중에는 어두운 감방에 가두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러한 죄수들의 경우 어두운 감방에서 환영처럼 보이는 섬광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안내섬광(眼內閃光, phosphenes)을 `죄수들의 영화'라고 불렀다. 어둠 속에서 상상의 빛 쇼를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빛이 없이, 즉 시각적인 자극이 없이 오랜 시간 갇혀 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일상생활에서 주로 경험해본 다음 사례는 익숙할 것이다. 잠에서 깬 뒤 가장 먼저 하는 일 중 하나가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는 일이다. 그러면 눈꺼풀 안에서 빛의 불꽃놀이가 벌어진다. 눈꺼풀을 눌렀을 때 보이는 점과 나선형 모양은, 누르는 압력이 눈 뒤쪽에 있는 망막 세포를 속여서, 빛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뇌에 거짓 메시지를 보내게 된다. 죄수들의 영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짧은 홍보 클립 정도는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예로는, 머리를 세게 맞았을 때, 혹은 재채기를 심하게 했을 때도 섬광 불꽃놀이가 눈꺼풀 안에서 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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