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병천 순대왕
15. 병천 순대왕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5.03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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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보무사<773>
글 리징 이 상 훈

'난 병천국 금화보따리를 가질 권리가 있어'

염치는 나무상자 속을 이리저리 뒤적거려서 아까 가전이 깊숙이 감춰놓았던 금화보따리를 살그머니 끄집어내었다. 염치가 한 손으로 그걸 들기에는 조금 버거울 정도이니 꽤나 많은 금화가 들어있음에 틀림없었다.

'내가 병천국에 들어가서 손발이 다 닳고 뼈가 빠지도록 일을 해줬던 게 얼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 쫓기듯 빈 몸뚱이로 도망쳐 나왔으니 이 내 억울함을 누구에게 하소연하고 어이 달래 볼까나. 다행히 요런 금화덩어리를 내게 준다고 가져왔으니 어쨌거나 난 요걸 가질 권리가 있단 말이지. 그러니까 이건 절대로 도둑질이 아니야. 아암, 아니고말고!'

염치는 스스로 위로해 보듯 이렇게 중얼거리며 금화보따리를 끄집어내긴 했지만 그래도 뭔가 불안하고 찝찝한 기분이 영 가셔지지 않았다.

'그래! 사람 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니 나중에 들킬 때 들키더라도 뭔가 일을 좀 .'

염치는 금화 보따리를 집어 들고 골방 안으로 들어가 저울대 위에 올려놓은 뒤 정확히 무게를 달았다. 그리고 그 금화보따리를 풀어서 머릿속까지 환해질 정도로 번쩍 거리는 금화들을 몽땅 다 쏟아낸 다음, 아까 그 무게와 똑같이 맞춰서 돌멩이들을 잔뜩 집어넣었다. 염치는 그래도 혹시 또 알 수 없는 일이기에 만약을 생각해서 몹시 아깝긴 하지만 돌멩이를 넣은 그 보따리 안 맨 윗 부분에 번쩍거리는 진짜 금화 몇 개를 꼭꼭 눌러 넣어 채웠다.

잠시 후, 돌멩이를 가득 채운 보따리를 들고 골방에서 나온 염치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며 아까 그 곳으로 돌아가 나무 상자 속옷가지 틈사이에 아까처럼 똑같이 집어넣었다.

이제 염치가 해야할 일은 진짜 금화들을 가지고 처자들과 함께 이곳에서 멀리 도망가 버리는 것! 이마마한 재물이 있을진대 어디 어느 곳으로 간다 한들 고생이야 하겠는가!

'자, 어서 빨리 여자 목욕탕에서 일하고 있는 여편네를 불러가지고 집으로 가서 도망칠 준비를 해야지. 우물쭈물 거리다가는 들통 나버려 온 가족이 목숨을 잃게 된다고.'

염치는 급히 서둘러 옆에 있는 여자목욕탕으로 가보았지만 평소 그렇게 자주 눈에 뜨이던 커다란 몸집의 아내가 오늘따라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이 여편네가 갑자기 어디로 샜나 혹시 손님 때를 밀어주러 아, 아니야. 저기 저 치마가 벽에 걸려있는 걸로 보아하니 지금 여탕 안에 있는 건 아닐 테고 큰일 났네 큰일!'

염치는 너무 초조한 나머지 두 발을 동동 굴러대다가 여자 목욕탕 안을 몰래 들여다보기도 하고 심지어 여자 뒷간에도 살짝 들어가 보았다. 그러나 염치 아내의 행방은 묘연했다.

그런데 염치의 커다란 아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아까 염치가 목욕탕 안에서 가전을 만나 대화를 주고받을 무렵, 여자 목욕탕 안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일하고 있던 염치 아내에게 근처에 있는 어느 온천목욕탕 집 주인 여자가 급히 쫓아와 말했다.

제법 돈이 많아 보이는 어느 젊은 여자 손님이 자기 목욕탕 안에 들어와서 때를 좀 밀어달라는 데 그 여자의 키가 워낙 크다보니 자기 같은 조그만 여자들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엄두조차 나지 않더라는 것이다.

"내가 이에 대한 수고비는 두둑하게 곱절로 쳐서 줄 터이니 어서 빨리 가서 그 여자 좀 대신 맡아줘요."

"어머! 여기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그건 내가 대신 맡아서 해줄 것이니 아무 염려 말고 어서 빨리 가봐요."

"대체 얼마나 몸집이 큰 여자이기에 그러우 설마하니 나 정도는 되나"

"호호. 어쨌거나 두 사람이 서로 언니동생을 하면 딱 어울리겠수. 호리호리한 체격에 키가 아주 커서 우리 같은 보통 여자들은 그 여자의 젖가슴 아래에 채이고 만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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