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일깨워준 감사한 나라
행복을 일깨워준 감사한 나라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2.19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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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규량의 산&삶 이야기
한 규 량 <충주대 노인보건복지과 교수>

집을 떠난다는 것은 고생이 시작된다는 것임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어디로든 떠나기를 원한다. 아무리 좋은 여행길을 마치고 돌아와도 결국 집으로 돌아오고, 돌아올 때쯤이면 피곤에 지쳐 빨리 집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그러다가 또다시 일상의 수레바퀴에서 탈출하고 싶을 때가 되면 집 밖으로 뛰쳐나가 떠나는 일을 반복하게 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처럼 어릴 때 혹은 젊었을 때 겪은 고생은 성인이 된 후에는 그것을 고생이라 여기지 않고 모두 추억담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당장의 그 고생을 겪는 순간에는 불행이어서 고통이 크고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려고 한다. 그 안에서 기쁨과 행복이 있다는 것을 그 순간에 알 수 있으면 훨씬 고통이 절감되련만, 세월이 지나서야 알게 됨을 반복하는 악순환이 거듭된다. 그래도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이 가진 잠재능력이 발현되고 한계상황에서의 능력을 키워나가게 되므로 도전하고 또 도전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 네팔을 찾았을 때, 10대에서 20대의 젊은 남자들이 일자리가 없어 공항의 포터라도 하려고 벌떼처럼 달려들었던 것을 보고 이들의 싼 인력을 활용하여 공장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중국으로 가는 것보다 훨씬 원가절감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네팔에서는 자체 생산하는 농산물을 제외한 공산품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다. 이유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1차 가공 수공업 정도의 공장이면 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윈-윈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공장을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방문을 통해 네팔은 결코 기업하기 쉬운 나라가 아님을 알았다. 가장 큰 이유는 전기사정이었다. 하루에 예닐곱 시간 정전되던 것이 이제 하루에 8시간밖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그것도 가장 전기가 필요한 시간이 아닌 때이거나 예고된 정전이 아닌 것이다. 언제 들어올지 모르고 언제 전기가 나갈지 모르는 상태이다. 그저 들어오면 4시간 후에 나갔다가 언제 다시 들어올지 기약이 없다. 그렇기에 전기가 들어올 때 부지런히 전기를 이용한 일을 열심히 해두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상식인데 비해 전기를 핑계로 일을 오히려 게을리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공장 동력 에너지의 부족이다. 작년에 비하면 그나마 좋은 편이다. 오토바이에 들어가는 소량의 휘발유를 사기 위해 3~4시간이상 줄을 서서 대기해야만 했었다. 언제 또 이렇게 될지 모르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세 번째 이유는, 자잘한 뇌물이 성행하는 공무원들의 사고방식이다. 이 때문에 일처리가 늦어지고 있는데다 네팔인의 소와 같은 느림의 철학에 한몫을 더해주는 셈이다. 공장을 세우려고 시작했다가 1년 또는 2년이 걸릴지 모르는 상황이 될 것이다.

네팔사람들은 시간이 걸린다 할지라도 그러려니 하면서 잘 참고 기다려 준다. 해외에서 외화벌이를 하다 돌아온 많은 사람들이 선진문화양식에 젖어 귀국 후 본국의 많은 불평과 의견제시를 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이들 역시 몇 달이 지나면 과거 자신들의 삶의 양식으로 바로 되돌아 간다고 한다. 전기 사정이 매우 나빠지면서 혹자는 "네팔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매우 혼란한 상태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예측은 빗나가고 말았다.

이곳에 온 지 열흘이 지났지만 나 역시 잘 적응하며 지내고 있다. 전기가 없으면 촛불로 분위기를 만들 줄 알고 그마저 싫다면 낮시간에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생활을 만들어 낸다. 휴대폰과 컴퓨터가 없으니 이보다 더 불편할 수 있겠는가 하겠지만, 불편은 불행이 아니라 행복의 시작이다. 그동안 흔전만전 사용했던 전기에 대한 고마움을 절절히 느끼게 해주고 있다. 예고없는 단 1초의 정전도 허락할 수 없던 우리나라의 전력시스템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바라는 것이 없게 되었으니 그것이 곧 큰 행복이다.

크게 바라지도 않고 불평하지도 않는 네팔인들은 나에게 행복을 일깨워준 스승들이다. 이곳에서의 불편과 고행을 통해 지금까지의 삶에 고마움을 인식하게 해준 감사한 나라 네팔이다. 가끔 네팔에 가고 싶어하고, 이곳에 오면 편안한 이유가 바로 내가 네팔을 찾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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