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인 돌
뜨인 돌
  • 김은혜 수필가
  • 승인 2024.05.07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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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은혜 수필가
김은혜 수필가

 

남편이 나를 `뜨인 돌' 같단다. 뜨인 돌? 뜻밖의 표현에 뜨인 돌의 실체를 찾기 위해 성경을 열었다. 현대 성경에서는 `손대지 아니한 돌이 산에서 나왔다.' 했고, 옛날 성경에는 남편이 말한 `뜨인 돌'이라 했다. 그리 달가운 단어가 아니다.

부부 연을 맺고 없는 살림에 사 남매 키우며 힘겹게 살아온 날들은 어디 가고, 이십 중반 신혼 적 내 마음만 각인되어 있다니. 그렇다. 꿈 많은 시절 결혼하면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것 함께 알콩달콩 살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한데 남편은 없는 집 현모양처인 아내를 원했다.

남편의 말을 정리하면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을뿐더러 고생을 모르고 자라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어떻게 가난한 환경에 적응시키나 고민하며 나를 대했다는 말이다. 모난 부분이 많은 철부지 아내를 조심스레 다루느라 말보다는 행동으로 다가오느라 마음고생이 많았다는 얘기다

자신은 없는 집 장남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온갖 험한 일을 다 하며 자라온 터라 고생이란 단어에는 익숙하다며 호언장담하는 자존심이 강한 남자였다. 아내에게까지 없는 살림을 보여주기 싫어 월급봉투를 자신이 갖고 있으면서 내가 필요하다고 할 때마다 생활비를 조금씩 건네주었다. 그런 모습에 나는 자주 마음이 다쳐 섭섭한 마음이 종종 일곤 했었지.

부부란 동등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나는 믿었다. 행복한 투정인지는 몰라도 어린아이로 인정받는 게 싫었다. 가정의 울타리를 떠나 밖에 나오면 낙천적인 성격에 상대방을 잘 배려한다고 친구들은 칭찬했다. 그럼에도 물가에 내놓은 철부지 어린아이로 여기며 행여 실수할세라 늘 절제를 강요하며 후한 점수를 주지 않았다.

우리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던 지인은 `아내를 곤달걀 위하듯 한다.'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나를 과잉보호했다. 정말 남이 보기에는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을 정도로 남편의 눈길은 늘 나의 주변을 맴돌았다.

첫 수필집에 일곱 살 난 막내 도련님의 만남을 시작으로 자녀들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잊고 싶지 않았던 토막 이야기를 글로 나열했었다. 가족 모두를 소개하고 남편만 홀로 남겨 놓자니 미안한 마음에 평소 살면서 재미있고 행복했던 추억을 찾고 싶어 머리를 쥐어짜며 찾아보았지만 찾지를 못했다. 살면서 어찌 재미있던 일화가 없었을까만은 뚜렷하게 내놓을 만한 이야기가 없어 할 수 없이 남편의 모습에 걸맞은 `버팀목'을 제목으로 정하고 글을 써 내려가다 이렇게 표현한 대목이 있다. `나에게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남편이라 말할 것이고, 이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도 그 대답 역시 남편'이라 말한다고 했다.

산 위 바위에서 방금 떨어져 나온 뜨인 돌 같은 나를 남편은 삼십에 만났다. 가장의 자리를 지키느라 인고의 삶을 살면서 지고지순, 나만 바라본 사랑을 왜곡하지 않게 그 아픔을 먼저 터득한 사람답게 너른 가슴으로 갓 뜨인 돌을 지혜롭게 안고 보듬어 주지 왜 늘 법조인처럼 `그러면 안 돼, 그렇게 해서도 안 돼' 절제만 강요했나. 수많은 말로 강요당할 적마다 곰 삭히고 곰 삭히느라 얼마나 많은 아픔을 느꼈을까 생각이 들지는 않았는지. 한 번쯤은 아내를 향한 일편단심의 사랑을 귓속말로라도 속삭여 주지.

고생이 무섭지 않다며 가난은 가난을 생활로 배워야 그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자주 말했다. 야무진 꿈을 품고 사업을 시작해 사십 초반에 그 꿈을 현실로 이루어 자수성가한다. 집이 가난해 꿈도 꾸지 못했던 공부를 늦깎이로 시작해 성직자의 길을 걸으며 독학하는 청소년이 모인 자리에서는 주저 없이 주 안에서 성공한 성공 사례를 들려준다.

이십 중반에 가난한 청년의 손에 들린 뜨인 돌인 나는 얼마나 갈리고 깎였나? 어린아이가 만져도 상처가 나지 않을 정도로 다듬어진 바닷가 조약돌로 변했나. 아니면 누가 보아도 가까이 놓고 싶어 할 정금 같은 보석으로 변했나. 이제 와 생각하니 조금은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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