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순이들
꽃순이들
  • 전현주 수필가
  • 승인 2024.04.3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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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전현주 수필가
전현주 수필가

 

카톡이 요란하게 울리면서 꽃 사진이 쏟아져 들어온다. 꽃순이들이라 이름 붙인 카톡방에는 수시로 꽃소식이 전해진다. 오 육십 대 여자 셋이 모여 꽃 이야기를 나누는 방이다.

우리는 가끔 이렇게 정원의 나무와 화초 이야기로 그야말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얼마 전 뒤늦게 꽃의 세계에 발을 들인 글 모임 후배로부터 점심 식사에 초대받았다.

그녀는 이따금 만큼씩 꽃 사진을 올리거나 나무의 이름을 묻곤 하더니, 드디어 정원 가꾸기에 푹 빠져들었다. 한번 중독되면 도무지 헤어날 수 없는 세상으로 발을 들이고야 말았다.

후배가 언니들이 왜 그리도 꽃에 열광하는지 이제야 알겠다며 웃는데, 그 얼굴이 너무도 편안해 보이고 고와서 다시 쳐다보았다.

똑소리 나고 야무지다고만 생각했던 후배의 반전 매력이다. 꽃 중독이라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중독이지 않은가.

그녀는 오랫동안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집 마당을 조금씩 정리하고, 지난해부터 텃밭 자리 한편에 꽃밭을 꾸미기 시작했다.

자신의 직업이 있으면서도 남편의 과수원 일을 거들고, 아들 삼 형제까지 건사하고 키워내느라 그동안은 꽃 한 포기 심고 가꿀 마음의 여유가 없었으리라. 이제라도 꽃을 가꾸며 정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자신을 상상한다고 하니, 후배가 하루빨리 꽃그늘에 앉을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후배의 전화를 받고 우선 진작부터 선물하려고 마음먹었던 삼색 버드나무를 챙겼다. 작년 봄부터 뿌리내림 해 놓았는데 무사히 겨울을 잘 났는지 유난히 일찍부터 초록빛 새싹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

막 꽃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하는 보라 유채와 분홍달맞이꽃, 화분에 옮겨져 집안으로 피신했던 꽃 인심 좋은 아게라툼 화분도 실었다. 사실 이 모든 것이 다 내 것처럼 보여도 그중 대부분은 나도 나눔을 받은 것이다.

포기를 떼어 나눠 줘야 꽃이 더 잘 피는 수련처럼, 정원의 꽃과 나무 또한 서로의 것을 주고받으면서 더욱 풍요로워지나 보다.

함께 초대받은 선배는 다육식물을 비롯해 모든 화초를 기르는 수준이 프로급이다.

선배는 바삐 오는 길임에도 꽃시장에 들러 꽃모종을 한 아름 사 들고 왔다. 늘 이렇게 품이 넓고 따뜻한 사람이다.

우리는 이 순간만큼은 부자가 하나도 안 부럽다며, 꽃 선물 주는 사람이 제일 좋다며 웃음꽃을 피운다. 아직 식물의 이름이 낯설기만 한 후배는 허둥지둥 받아 적기 바쁘다. 아주 오래전 내 모습 같다.

후배가 정성스레 준비한 점심을 먹으며 엄마의 밥상이 생각난 것은 왜일까. 오늘 하루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아무 걱정이 없다.

카톡이 울리며 선배가 당일로 다녀왔다는 서산유기방가옥의 수선화 꽃밭 사진이 올라온다.

끝도 없이 펼쳐진 수선화가 핸드폰 화면을 노랗게 물들인다.

연이어 만발한 앵초꽃이며, 가여워서 안 뽑고 놔둔 봄맞이꽃이 안개꽃처럼 화사하게 피어있는 사진을 공유한다.

잡초라고 뽑아냈다면 만나 볼 수 없었을 풀꽃이 피어 이리도 아름답게 봄 햇살을 만끽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옆집과 맞닿은 담에 심을 생나무울타리는 무슨 나무가 좋을지, 주방에서 내다보이는 창문 앞에는 어떤 꽃나무가 어울릴지 의견을 나눈다.

꽃 이야기만 하는 카톡방이라니! 우리는 자식 자랑, 남편 자랑, 돈 자랑이 아니라 꽃을 뽐낸다.

아무리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어 놓아도 혼자만 본다면 그다지 기쁠 것 같지 않다.

우리는 왜 꽃에 환호하는 것일까. 어쩌면 삶에 지친 우리를 꽃이 위로해 주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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