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 그는 누구인가
온달, 그는 누구인가
  • 김효진 충북도문화재연구원 중원학연구팀 연구원
  • 승인 2023.09.17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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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문화유산 이야기
김효진 충북도문화재연구원 중원학연구팀 연구원
김효진 충북도문화재연구원 중원학연구팀 연구원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기 어려운 한국의 고대 역사에서 온달은 아주 흥미로운 소재일 것이다.

평강공주와의 사랑 스토리를 비롯해 본래 가난했던 형편을 딛고 일어서 단숨에 장군으로 성장하는 과정, 국가를 위해 헌신하다가 전쟁터에서 사망하는 모습 등은 지금의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일생은 동화책, 위인전과 같은 책자는 물론, 연극ㆍ뮤지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다.

특히 충북 단양군에는 온달이 전사한 곳으로 추정되는 온달산성이 있으며, 매년 온달과 관련된 축제를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역동적이면서도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다가 간 그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온달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삼국사기』에 실린 그의 열전에 근거한다.

여기를 잠시 살펴보면, 그는 용모가 못생겨 남들의 웃음을 샀고, 또한 가난하여 항상 구걸했으며 행색이 보잘것없어 `바보(愚)' 온달로 불렸다고 한다. 그러한 온달이 평강공주를 만나고, 장인어른인 평강왕의 인정을 받아 단숨에 신분이 상승하게 된 것은 유명한 스토리이다.

장황한 서사를 근거로 그동안 학계에서는 다양하게 온달의 신분을 추측하였다. 하급 귀족, 몰락한 귀족, 아니면 일반 평민이라는 의견도 나왔는데, 모두 공주와 결혼할 수 있는 신분이라는 점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가만히 보면, 온달은 평강공주를 만나자마자 곧바로 집, 노비, 소, 말 등 다양한 살림살이를 장만하고 있다. 물론 공주가 가져온 귀중품에서 비롯되긴 했지만, 과연 그것으로 전부 가능했을까 라는 의심은 지우기 어렵다.

한편, 온달을 고구려 사람이 아닌 서역의 강국(康國) 출신으로 보기도 한다. 여기에 따르면, 그의 행색이 추리하고 `바보'로 불린 이유로 아버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아가 온씨(溫氏)는 강국에서 교역을 위해 고구려로 건너온 사람들이고 온달의 아버지도 그중 하나였을 것이라고 한다. 강국의 왕성(王姓)이 온씨였다는 사실도 미묘하게 흥미를 끈다.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아프라시압 벽화에는 국왕인 바르후만의 즉위를 축하하는 사절단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여기에 제일 오른편에 서 있는 두 인물은 고구려 사신으로 추측되는 만큼, 고구려와 강국의 교류는 역사적 사실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온달과 관련된 기록은 설화적인 요소가 많이 첨가되어 있다. 어쩌면 그는 당시 고구려인들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일 수 있다. 현실적으로 이루기 불가능한 사건들을 하나의 긴 이야기로 묶어내면서, 영웅적인 인물의 출현을 기원했을 가능성도 지우기 어렵다.

당시 고구려는 백제ㆍ신라의 강력한 도전을 받는 중에, 서쪽의 중국 왕조와도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실제 온달열전에도 적대 세력으로 후주와 신라가 등장하고 있어, 고구려가 처한 국제적 상황을 간명하게 엿보게 한다. 이러한 시절에 온달과 비슷한 이력을 가진 인물이 고구려에 한 명쯤은 있었을 것도 같다.

물론 허구라고 하여 무시할 필요는 없다. 사실과 가상이 뒤섞인 미묘한 경계 속에 개인 스스로가 느끼고자 하는 점을 도출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의 우리가 온달이라는 인물을 기억하고, 다양하게 해석하고 있는 모습 그 자체에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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