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지역 백제시대 마을 이야기
청주지역 백제시대 마을 이야기
  • 김효진 충북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실 선임연구원
  • 승인 2023.09.1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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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문화유산 이야기
김효진 충북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실 선임연구원
김효진 충북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실 선임연구원

 

청주지역에서 봉명동 유적과 송절동 유적은 현재 `청주 백제유물전시관'과 `청주 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에 위치해 있다. 이 유적들은 원삼국시대에서 삼국시대로 이행되는 시기의 분묘유적과 생활유적의 일면을 보여준 사례에 해당한다.

먼저, 분묘유적을 살펴보면 청주 송절동 유적에서 확인된 분묘유적은 대부분 동일하게 주변 조망이 용이한 낮은 구릉의 정상에 있거나 사면부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조성되었다.

특히 청주 송절동 유적 토광묘에서는 와질토기가 출토되었다. 와질토기는 철기시대 토기의 한 종류로 회색 위주에 회흑색, 흑색 등의 색조를 띠며 단단하기가 기와와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와질토기는 그동안 청주지역을 포함한 중서부지역에서는 진천 송두리 유적, 오창 학소리 유적을 제외하고는 조사된 사례가 없었다.

그런데 청주 송절동 유적에서 출토되어 A.D 2세기대의 문화양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이 외에도 한 분묘에서 20점 이상의 원저단경호(圓低短頸壺 원삼국 시대에 서울·경기 지역부터 전라 지역의 마한권역에서 출토된 토기)를 부장하고 있는 양상을 보이는 점도 확인되었다.

원저단경호가 출토되었다는 것에서 그 지역의 세력집단이면서 시간성을 반영하고 있는지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검토 자료로서의 의미는 크다.

생활유적 중에 주거지는 취락에 거주한 사람들의 생활상을 복원하는데 가장 기초적인 물질자료라고 할 수 있다. 청주 송절동 유적은 500여 기 주거지가 확인되었다. 대규모 취락으로 청주지역의 취락과 취락 유형의 연구에 있어서 많은 정보를 제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수많은 주거지 중에 유리제작과 관련된 주거지가 확인되어 주목된다. 유리 생산과 관련된 유리 제작용 진흙틀 편이 저장공에서 확인되었는데, 출토된 진흙틀에서 생산된 것으로 보이는 유리구슬이 주거지 내에서 확인되었다, 주거지에서 출토된 대부분 유물이 일부 결실되어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으나 평면은 주로 원형을 띤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청주 송절동 유적에 유리 생산의 조업기술을 가진 집단이 생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청주 송절동 유적을 정리해보면 기존의 고고학적 물질자료에 더해 청주지역의 구석기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삶을 영위하였던 문화 흔적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라 볼 수 있다.

특히, 원삼국시대에서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유구의 수가 많아 이 시기에 청주지역의 세력집단의 특징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자료가 많이 축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축적된 자료로 청주 송절동 유적 축조집단은 지역적인 특색을 지니면서 연속성을 가지고 존속하였다고 볼 수 있다.

청주 송절동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과 이전 복원된 분묘유적, 그리고 생활유적은 `백제유물전시관'과 `청주 테크노폴리스 유적 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다. 우리가 사는 가까운 곳에 백제시대 사람들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유적이 있다는 것은 지역의 보물이 아닐 수 없다. 날이 선선해지는 요즘, 시간을 내 주말에 한번 다녀오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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