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성의 신화속의 날씨 <73>
반기성의 신화속의 날씨 <73>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6.1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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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용은 농업의 수호자
서양의 용은 악함과 파괴의 상징이 대부분이지만, 동양의 용은 대체로 좋은 상징으로 쓰인다. 서양의 용이 불을 뿜는데 비해 동양의 용은 비바람을 일으킨다.

서양의 용은 동굴 속에 살지만, 동양의 용은 깊은 못에 산다. 삼국유사에서 '깊은 못이나 바다가 있으면 반드시 용이 나온다'고 한 것이나, 주역에서 '구름을 부르고 비를 내려 세상의 모양을 푸르게 한다'는 등의 기록은 물과 관련 있는 용의 특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서양의 용과 달리 동양의 용이 구름과 비라는 날씨의 상징으로 된 것은 농업이 주 산업이던 동양의 지리학적 특수성에 기상학적 요인이 더해진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동양에서 용은 주로 네 가지의 일을 하는 동물로 그려지고 있다. 먼저 '천상의 수호자' 역할이다. 하늘에 사는 용은 신의 저택을 떠받쳐 붕괴하지 않도록 막는 일을 한다. 둘째로 지하에 사는 용은 땅 속의 귀중한 보석과 금속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이 용은 커다란 여의주를 물고 있는데, 여의주는 숨은 보물이나 지혜를 상징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날씨를 주관하는 용이다. 신비한 푸른빛을 띠며 변화무쌍하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날씨 용은 지상의 생명체가 살아가는데 크게 영향을 주는 바람과 구름, 비를 다스린다. 날씨를 다스리는 용이 화가 나거나 임무를 게을리 하면 무시무시한 날씨재앙이 몰려오기 때문에, 사람들은 날씨 용을 달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여야 했다.

마지막으로 물 속의 용왕이 있다. 용왕은 강물의 양을 조절하고 강의 진로를 결정하여 강둑을 보전한다. 모든 강의 깊은 물속에는 용왕이 살고 있는데, 용왕은 물속의 궁전(龍宮)에서 물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우리네 용 신화에는 주로 날씨를 다스리는 용이 등장한다.

"제가 살고 있는 연못에 젊고 힘센 청룡이 나타나 터를 뺏으려고 합니다. 제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으니 청룡을 물리쳐주면 반드시 은혜를 갚겠습니다."

황해도 장연군 용연면 용정리라는 곳에 김씨 성을 가진 활을 잘 쏘는 청년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꿈에 황룡이 나타나 도와달라며 애원을 했다. 꿈에서 깨어난 청년이 연못으로 가보니 물이 용솟음치는 가운데 청룡과 황룡이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어찌나 치열하게 싸우는지 청년은 겁이 나서 활을 쏘지 못했다. 그날 밤 청년의 꿈에 부상당한 황룡이 나타나 제발 도와달라며 또 다시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황룡을 도와주기로 마음먹은 청년은 다음날 연못에 나가 청룡을 활로 쏘아 죽였다.

"고맙습니다. 황무지를 개간해 논을 만들면 제가 평생 물을 대드리겠습니다."

보은을 하겠다는 황룡의 말에 따라 청년은 물이 닿지 않은 불모지를 개간하여 논을 만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곳에는 3년 가뭄이 들어도 청년의 논에는 농사지을 물이 늘 풍족했다. 해마다 곡간이 넘칠 정도로 기름진 쌀을 수확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마을 이름이 용의 연못이라는 뜻의 용연리(龍淵里)요, 용의 샘이라는 뜻의 용정리(龍井里)로 바뀌었다고 한다.

전라북도 김제에 전해 내려오고 있는 벽골제 신화에도 용이 등장한다. 백룡은 벽골제를 수호하는 용이고, 청룡은 농사를 망치거나 인명을 해치는 나쁜 용이다. 백두산 전설에서 백룡과 흑룡의 대결이나, 용정리 신화에서 황룡과 청룡의 대결처럼 벽골제 신화에서도 선과 악(백룡과 청룡)의 대결이 그려진다. 선한 용은 농사에 적절한 비를 내려 풍년을 주지만, 악한 용은 가뭄이 들게 하거나 홍수를 내려 농사를 망치게 한다.

용정리나 벽골제 신화에서 용은 두 가지 상징적인 의미를 나타낸다. 첫째는 용이 물을 관장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논농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세종 때의 문헌인 '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 용과 물의 밀접한 관계를 나타내는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 용을 나타내는 순우리말 '미르'의 말 뿌리인 '밀'이 '물'과 어원이 같다는 것이다.

"구름이 무더워지면 용으로 변한다(雲蒸龍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에 나오는 이 기록은 구름이 포화상태에 이르면 비가 내리는 기상학적 원리와 일치한다. 비와 동일한 의미로 용이 쓰인 것이다.

"龍은 물 속의 신기한 동물인데, 그것이 물을 얻으면 신이 작용하지만 물이 없으면 신이 없어진다(蛟龍 水中之神者也 乘水神則神立 失水則神一廢管子)"

"용이 물을 잃어버리면 개미와 지렁이가 건드린다(神龍 失水而隆居 爲蟻之所制一莊子)" 이와 같은 여러 기록은 용이 구름을 부르고 비를 내리게 하는, 즉 날씨를 주관하며 농업을 좌우하는 동물이었음을 나타낸다.

1차 산업에 의존했던 우리 선조들은 해마다 풍년만 들어준다면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그 때문에 홍수와 가뭄을 더욱 두려워했다. 조상들이 하늘을 두려워한 것은 농사를 짓는데 꼭 필요한 비 때문이었다. 피땀흘려 농사를 지어도 제 때에 비가 내리지 않거나 홍수가 지면 모든 것이 허사였다. 그래서인지 마을마다 용을 달래는 제사가 성행했다.

'용은 춘분(春分)에 하늘로 올라갔다가 추분(秋分)에 냇물 속으로 들어간다'는 속담은 춘분에 곡식을 심어 추분에 거둘 때까지 농업을 지배하는 수호자로의 용의 힘과 역할을 나타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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