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으로 보는 우리고장 이야기
지명으로 보는 우리고장 이야기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6.13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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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까치내
선비 목숨 살려 은혜갚은 까치 전설 서린 곳

글 신제인 생태교육연구소 터 소장

까치내는 무심천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미호천과 만나는 합수머리를 말한다. 이곳은 수중보를 제외하고는 하상도로나 하상주차장 같은 인공적인 시설물이 없는 곳으로 강폭도 200m 이상으로 넓다.

수풀 이루며 새들의 보금자리

또한 떠내려온 모래의 퇴적으로 넓은 모래톱이 형성되어 있어 물길을 돌리고,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모래톱의 자갈밭과 수풀은 다양한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고 있다. 그리고 굽이굽이 흐르는 여울 중간에 물이 고이는 소가 곳곳에 형성되어 있고, 바라만 보고 있어도 가슴이 탁 트이는 곳이 바로 까치내다.

까치내! 까치+내 그렇다면 까치내는 정말 까치와 어떤 연관이 있는 곳일까 '까치내'에 대한 지명은 예부터 전하는 이야기들을 통해 대신하고자 한다.

이야기 하나는 '경상도 상주에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호를 하연재(荷然齋)라고 하는 노학자가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는 학문과 천문지리까지 통달했는데, 그의 제자 중에서는 이원조와 백구영이 출중했다. 나라에 과거령이 선포된 어느 해 이원조는 청운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스승과 작별하고 서울로 향했다. 며칠 뒤 백구영이 스승을 뵙고 역시 길을 떠나겠다고 했다. 스승이 여러 가지 말로 만류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그러자 하연재는 "네가 가더라도 네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백구영이 떠나자 옆에 있던 하연재의 한 친구가 내막을 물었다. 그러자 하연재는 "저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범이 둔갑한 것인데 원수를 갚는다고 하는 것을 내가 말렸으나 듣지 않는다"라고 했다.

한편 이원조는 청주를 지나 합수머리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심하게 앓게 되었다. 주인이 의원을 불렀으나 차도가 없었다. 누가 흰 까치 고기를 먹으면 나을 것이라 하였다. 마침 합수머리 부근에 전에 없었던 까치 몇 마리가 며칠 전부터 날아와 놀고 있었다. 주인이 시험 삼아 미끼를 놓았더니 흰 까치 한 마리가 잡혔다. 그런데 까치를 들고 오는 도중에 갑자가 큰 범이 나타나 까치를 물고 가버렸다. 이원조의 병세는 더욱 위중해 갔다.

혼미한 가운데 이원조가 꿈을 꾸었는데 세 노인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한 노인이 "이번 과거에는 이원조가 장원을 할테지"하였다. 그러자 또 한 노인이 "호환(虎患)을 면하고 살 수만 있으면야 장원이 되겠지만, 아마 호환을 면할 수 없을걸"하였다. 그러자 세 번째 노인이 "아 그러면 그 사람을 살릴 방법은 없겠는가"하였다. 이에 이원조가 세 노인 앞에 가서 수없이 절을 하며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그러자 세 노인은 저 앞 동네 새터말의 김포수를 부르더니 "자네 합수머리 주막에 가서 범을 잡아 상주 선비 이원조를 구하게"했다.

아직 꿈이 채 깨기도 전에 이원조가 묵던 방 밖에서 벼락치듯 큰 총소리가 났다. 그러더니 밖에서 누가 이원조란 분이 계시냐고 물었다. 이원조가 겨우 몸을 추스려 나가보니 밖에 한 포수가 총을 들고 서 있고, 그 앞에는 큰 범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이원조가 자세히 보니 포수는 바로 아까 꿈에서 본 그 사람이었다. 포수 역시 꿈에 신령의 계시를 받고 주막에 달려와 범을 쏘았다고 했다. 그 죽은 범은 바로 백구영이었던 것이다. 이원조는 건강이 회복되어 과거를 보아 장원 급제했다고 한다. 그리고 흰 까치가 나타났던 합수머리를 그때부터 '까치내'라 불렀다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상주고을에 사는 한 선비가 있었다. 그 선비가 청주를 지나려고 하는데 무심천가의 버드나무에 웬 까치가 요란히 까악까악 하며 애절하게 호소하는 것 같이 슬피 울고 있었다. 버드나무 꼭대기 까치집에 여러마리의 새끼가 있고, 그 밑으로 큰 구렁이가 나무를 타고 새끼를 잡아먹으려고 두 갈래 혀를 날름거리며 노려보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어미와 아비까치는 새끼가 죽는 모습을 보며 그렇게 애달피 울어대는 것이었다. 선비는 못볼 것을 보았던 양 눈을 크게 뜨고 얼굴에 열을 올리며 까치새끼를 구하려고 긴 지팡이를 들고 나무로 올라가 구렁이를 다른곳으로 옮겨놓으려 했는데 구렁이는 필사적으로 지팡이에 엉키지 않고 도망가려다가 그만 제풀에 높은 데서 떨어져 죽었다. 까치새끼를 구해준 기쁨도 잠시뿐 큰 구렁이의 죽음이 못내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그때 바람소리를 가르며 갈대숲으로 도망가는 또 하나의 구렁이를 언뜻 보기도 하였다. 나뭇가지에서는 까치 두 마리가 고맙다고 그저 좋아 소리를 내며 날개를 치고 있었다.

선비는 기쁜 소리를 위안으로 잠시 쉬었다가 얼마후 길을 재촉했는데, 시장기가 돌아 어느 주막을 찾아야 되겠다는 마음이 급했다. 주막은 보이지 않고 길가 옆에 먹음직스러운 딸기가 보였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딸기를 맛있게 모조리 따서 먹었다. 먹고서 합수머리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복통이 일어나 그만 정신을 잃어 버렸다. 눈을 뜨니 미호천과 무심천의 합수머리에 있는 주막에 누워 있었는데 온몸이 퉁퉁부어 사경을 헤매는 것이었다. 인근 의원을 불러 그 병명을 물어보니 독이 온몸에 퍼져 자기는 고치지를 못한다고 돌아가 버렸다. 그것은 죽은 구렁이의 원수를 갚기 위해 암구렁이가 딸기에 독을 뿌려 선비를 죽이려고 한 것이었다.

까치 보은에 감사 명명한 이름

5일이 지나자 밖에서 까치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며칠 전의 울음소리와 같이 무엇을 애원하는 소리였다. 문을 열고 선비가 힘들게 나가보니 까치 대여섯마리가 울타리위에서 울더니만 선비를 보고서는 달려들어 선비의 등을 쪼기 시작하였다. 선비의 등에서 검은 피가 사정없이 쏟아졌고, 선비는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몇 시간 후 선비가 깨어났는데 신기하게도 붓기가 빠지고 가벼운 기분이 돋아났다. 그 다음날 그는 완쾌되었고, 오히려 더 맑은 정신에 총기가 더 좋아졌다. 그리고 과거를 보러 출발, 결국 장원급제를 하여 금의환양하다가 그 주막에 들러 까치의 보은에 감사한다는 뜻에서 그곳을 까치내라고 명명하였다는 이야기다.

어느 이야기가 더 신빙성이 있는 것일까 물론 두 가지 이야기 모두 전설이므로 사실과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흰 까치가 잠시 등장하는 조연이라면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전체적으로 까치가 주연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현재의 까치내는 까치와 관련이 있음을 이 두 가지 전설을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대동여지도와 여지도서 등 옛날에 만들어진 지도와 지리지에도 까치내를 작천(鵲川)이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이렇게 까치작(鵲)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까치와 무슨 관련이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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