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으로 보는 우리고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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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5.30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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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짐대마루
무쇠 당간 세워 마을의 번창 빌다

글 신제인 생터연구소 '터' 소장
▲ 하복대택지개발지구 공원에 세워진 상징물. 청주에는 비끼내(사천·斜川), 쇠내개울(금천·金川), 용바위골(용암·龍岩) 등 정감있던 마을의 이름들이 한자화로 인해 약간은 경직된 느낌이 드는 지명으로 변한 예들이 많다. 그 중에 '짐대마루'라는 지명이 있는데 현재의 '복대동'을 말한다. 그렇다면 '복대동'을 옛날에는 왜 '짐대마루'라고 하였고 그 '짐대마루'가 어떻게 '복대'로 바뀌게 되었을까 먼저 '청주지명유래'에 나오는 복대동(福臺洞)에 대한 설명을 찾아보면 "'복대동'은 본래 청주군 서주내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짐대마루'라고 부르던 지역이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죽천리, 화진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복대리(卜大里)라 명명하고 사주면에 편입하였다. ▲ 짐대마루의 지명유래비.

1693년 복대동으로 명칭 바꿔

1963년 복대동(福臺洞)으로 바꾸어 청주시로 편입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 '호서읍지'(湖西邑誌),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에는 '卜大(복대)'로 나오나 1961년에 간행된 '청주지'(淸州誌)로부터 '福臺(복대)'라고 쓰기 시작하였다"라고 나온다.

위 설명을 통해 복대동은 짐대마루→복대(卜大)→복대(福臺)로 바뀌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어떻게 이같이 바뀌게 되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짐대마루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짐대마루'는 '짐대'와 '마루'가 합쳐진 것이다. '짐대'는 '돛대' 또는 '사찰에서 당이라는 깃발을 세우는 기구'이다. 여기에서 갑자기 배에 사용하는 '돛대'가 나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이 지역에 전하는 전설이 있는데….

"선조 때 토정 이지함과 박춘무가 아양산(부모산)에 올라 복대동 일대를 보니 행주형(行舟形)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장차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번창하게 될 것이지만 정착하는 사람은 적고 뜨내기가 많을 것을 알았다. 그것은 달리는 배에 짐대(돛)가 없기 때문이며, 행주형 지세에 물이 귀하다는데 그 원인이 있음을 알았다. 그들은 이곳에 번창한 도시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무쇠로 만든 당간을 세우고 그 곳 마을을 '짐대마루'라고 불렀다. 그리고 배가 함부로 떠내려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아양산 동쪽 기슭(현 지동동)에 쇠대를 박았다. 지금도 이곳을 '쇠대박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서 연유한다."

행주형 지세로 볼때 돛대로 해석

이처럼 행주형 지세를 고려한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짐대'는 배의 '돛대'로 해석해야 한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짐대'의 뜻은 첫째가 돛대이고 둘째가 불교에서 당을 달아 세우는 대라고 나온다.

여기에서 이 지역이 원시종교이건 불교이건 신앙의 중심지였다면, '짐대'는 신앙의 징표로 바라볼 수 있다. 즉 '짐대'란 불교에서건 무속에서건 어떤 상징물을 달기 위해 세운 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짐대'는 "솟대, 오릿대, 솔대, 소줏대, 수살이, 거릿대"라고도 하며, 그 기능은 신앙의 대상물이었다.

아마도 지금의 복대동 일대는 이른 시기부터 신앙의 대상을 옹호하던 기관이나 사람들이 많이 살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서 혹자는 이 지역이 예전에 신성한 지역인 '소도'이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한다. 어찌되었든 '짐대'는 나무나 쇠로 만든 높게 세워진 대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래서 '짐대마루'는 이 '짐대'가 있는 곳이다.

'짐대마루'에서 '마루'는 무엇인가 '넓은 곳', '높은 곳' 등의 의미를 가지는데 분평동에 있는 넓은 뜰을 뜻했던 '원마루'라든지 흔히 '산마루'라는 것을 연상하면 되겠다. 그렇다면 '짐대마루'는 짐대가 있는 넓고 높은 곳이라는 뜻이 된다.

그러면 '짐대마루'라는 순우리말 지명이 어떻게 '복대'(福臺)로 변하게 되었을까 이는 '청주의 지명'이라는 논문집에 잘 나와 있는데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짐대'가 갑자기 '복대'로 변한 것이 아니고 그 중간에 '복대'(卜大)가 있었다. 즉 '卜大'로 표기하던 것이 '福臺'로 고쳐진 것은 그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1961년에 간행된 '청주지'부터 '福臺'를 볼 수 있고, 그 이전에 간행된 '여지도서', '호서읍지', '충청도읍지' 등에서는 '卜大'라 되어 있다.
훈민정음 창제 이전 또는 그 이후에 우리말을 표기하는 방식은 한자의 음과 훈을 이용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卜大'가 바로 이런 방식에 의하여 '짐대'를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卜'은 '짐'으로 읽고 '大'는 '대'로 읽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문자 '卜'은 그 형상이 사람(ㅣ)이 등에 짐(')을 진 모양이므로 우리나라에서는 '卜'을 '짐'이라 읽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卜'과 '짐'의 결속력이 약해지면서 '卜'의 일반적 한자음인 '복'으로 읽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짐대'를 표기했던 '卜大'가 '복대'로 읽히면서 결국에는 '卜'대신에 의미상 좋은 뜻을 지닌 복복자(福)을 쓰게 되었고, '大'를 '臺'로 바꾼 것은 '짐대'에 후행하는 '마루'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즉 '마루'가 '넓고 높은 곳'을 지시하기에 그 의미에 부합하는 '臺'를 선택한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하복대택지개발지구내 공원에 세워진 상징물에도 간단히 나온다. 현재 복대동은 '짐대마루'→'卜大(복대)'→'福臺(복대)'로 그 이름 뿐만 아니라 많은 것들이 변해왔고 변해가고 있다. 토정 이지함이 예언했던 것이 맞는지 많은 아파트가 들어섰고, 5만명이 넘는 인구가 복대동에 거주하고 있다. ▲ 복대2동 경로당 이름, 짐대경로당.

모든 것이 변하고 발전한다 해서 뿌리를 잃어버리는 것은 언제나 안타까운 일인데, 그나마 복대동에서는 짐대마루 지명유래비와 짐대1로, 짐대2로라는 길 이름, 그리고 복대2동 경로당 이름이 짐대경로당이라고 하는 것에서 옛 지명의 흔적을 찾을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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