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탐방 박물관
테마탐방 박물관
  • 연숙자 기자
  • 승인 2007.04.09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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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뿌리 민속박물관

발품팔아 모은 민예품… 민화 병풍류 등은 白眉

 소 개
"1970년대 초, 서울 인사동에 경기도 양주 산대놀이 탈 세트가 경매로 나왔어요. 탈은 춤꾼이 죽으면 함께 태워버리는 풍습 때문에 옛 탈이 거의 남아 있지 않는데, 조선시대의 탈이 그것도 전 세트가 경매로 나왔으니, 얼마나 관심이 많았겠어요. 전국의 민속학자들 간에 경쟁에 붙어 가격이 올라갔어요. 당시 회사 중역이던 내 월급이 25만원이었는데, 탈을 사기 위해 몇 달치 월급을 털어 70만원에 구입했습니다."

탈이 걸린 전시실에서 당시 수집 동기를 생생하게 들려주는 이영준 예뿌리박물관 관장은 30여년 전의 기억을 풀어내며 입가에 가득 웃음이 고여왔다. 칠순을 훨씬 넘긴 나이임에도 열정을 느낄 수 있는 눈빛은 유물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 예뿌리민속박물관 전경.


이영준 관장의 미술품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담긴 예뿌리박물관은 청원군 가덕면 금거리 큰 길 옆에 자리 잡고 있다. 논과 밭이 보이는 시골 전경 속에 붉은 벽돌로 지어진 3층의 박스형 건물은 단순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박물관으로 들어가면 1층은 휴식 공간인 찻집으로 운영하며 그림전시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2층 3층 전시장에는 민화, 민불, 민예, 민속자료, 지도 등을 전시해 한국의 민속미술인 민예품을 총망라해 보여주고 있다.

민속미술 역사적 흐름 느껴

▲ 경기도 양주 산대놀이 탈을 설명하고 있는 이영준 관장. 이 관장은 "하나의 테마로 개관한 박물관에 비해 예뿌리박물관은 다양하고 충실하게 그리고 좋은 작품과 많은 양의 민예품을 장르를 넘어 전시하고 있는 종합적인 민속박물관"이라고 소개하고 "전시된 미술품은 수준 높은 작품들로 샤머니즘 고유의 미술품을 비롯해 동물 숭상, 무속문화와 결합된 여러 종교의 사상이 미술품으로 승화된 작품 등 민속미술의 역사적 흐름을 느낄 수 있는 미술품들로 구성했다"고 한다. ▲ 도자기, 민화병풍, 목판, 목가구 등 다양한 한국 미술품이 전시된 2층전시장.

개개의 유물 특징을 살리기 위해 평범한 방법으로 전시장을 꾸몄다는 이 관장의 말처럼 투박하면서도 민중의 익살과 정서가 들어있는 다양한 민속미술품에서는 친근하면서도 애절한 서민의 삶이 설핏 설핏 비쳐졌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민화 병풍이었다. 지금껏 보아온 민화와는 다른 독특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데, 어린아이 그림처럼 그려진 여인의 얼굴 표정이 단순하고 해학적이어서 웃음이 절로 났다.

이 관장은 "십장생도 팔폭병풍, 도원소요도 팔폭병풍 등 소장하고 있는 병풍으로 된 민화는 일반인들이 보아온 민화와는 달리 보기 힘든 미술품"이라며 "한국 민화는 동심의 그림이며 자유분방함 속에서 기상천외한 세계를 보여주는 민중 미술로 자유분방한 한국 민화의 특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목각 부적판 등은 박물관 자랑

▲ 다양한 목각 부적판 8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그는 또 "평생 모아도 10개 이상 수집하기 힘든 것이 목각 부적판"이라며 "다양하게 수집한 민중 미술의 80여점 목각 부적판과 청자철화 모란문 주자나 백자철화 도인상 등 도자기류는 박물관의 자랑"이라고 말했다. 개인의 수집으로는 미술품의 가치나 양에서 방대하게 소장하고 있는 예뿌리박물관은 이영준 관장의 평생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통영이 고향인 그는 부모의 반대로 어릴 적 미술의 꿈을 접고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고 한다. 대학에서도 미술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공부하던 그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인 유물 수집을 시작하며 수집가 길을 걷게 되었단다. "월급타면 유물 사느라 집에 월급도 못 갔다 준적도 많았어요. 평생 유물 사는데 돈을 쓰다보니 도자기를 사 놓고도 집에 들고 들어가기 미안해 사무실에 보관해 둔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지요. 그렇게 50년을 수집한 유물이 박물관에 전시된 물건"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실무를 맡고 있는 아들 이창선 실장은 "아버지는 미술품을 보는 안목이 높은 분이다"며 "무명 작가라도 될성부른 작가를 볼 줄 아는 안목으로 박수근과 같은 우리 나라 유명 작가의 작품을 어릴 때 거의 집에서 다 보았다"고 한다. 평생을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살아온 이 관장을 보며 연고가 전혀 없는 이곳에 박물관을 세운 이유가 궁금해졌다. "박물관을 세우려고 자리를 물색하던 중 경제적인 면이나 지리적인 면에서 가장 적합해서 청원군에 자리잡게 되었다"고 말하고 "연고가 전혀 없어 박물관 운영에서 경영의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애정 없이 박물관을 운영할 수 없다는 그는 "미술품들은 분신과 같은 것들이서 떼서 누굴 줄 수도 없고, 팔수도 없다"며 현실적으로 미술품을 관리하고 수집, 운영해야 하는 박물관 사업의 애로를 털어놓았다. 이러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한국미술에 관한 그의 생각은 철저한 기본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요즘은 크고 화려한 것을 추구하지만 조선의 탈을 보면 평화와 온화의 심볼을 지니면서 어떤 변형에서도 조화로움을 잃지 않고 있다"면서 "예술적 뿌리와 정신을 일깨워 주는 한국미술품에서 기본을 놓치면 안 된다"며 강조했다. 또 우리의 얼과 숨결로 영글어진 미술품들이 울주의 반구대에 새겨 놓은 암각화처럼 오랜 숨결로 남길 바란다는 소망을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도 미술품 수집을 위해 전국을 찾아다닌다는 이 관장은 전시품의 수집한 경로보다는 이곳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며 꼼꼼하게 미술품을 분류 목록을 적어주었다. 달필은 아니지만 가지런하고 또박또박 적은 글자였다. 목록을 받아 들고 평생을 투자하고 사랑한 그의 미술품 앞에 서서 나는 얼마 동안 눈길을 주었나, 너무 쉽게 돌아서는 것은 아닌가, 잠시 생각해본다.  찾아오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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