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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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4.06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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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악기인 것은

김 진 경

나무가 악기인 것은
지워지지 않으려 온몸으로 울기 때문이다.
나무들이 우는 소리
능선을 넘어
온 산을 쏟아져 내리는 폭포를 이룬다.
나무가 악기인 것은
지워짐과 지워지지 않음을 넘어
전력을 다해 울기 때문이다.
눈 갠 하늘 아래
기진한 나무들이 하얗게 얼어붙었다.
녹아내린 눈이 가지 끝에 고드름으로 달려 흔들리며
풍경 소리를 낸다.
나무가 악기인 것은
소리의 끝에서 무심하기 때문이다.

-시집 '지구의 시간' (창비) 중에서-

   
<김병기시인의 감상노트>
풍경을 달고 줄 없는 거문고를 퉁기던 나무가 울기 시작한다. 겨우내 악기를 만드느라 손톱이 벗겨지고 입술이 헐은 나무가 몸을 찢어서 초록눈물을 밖으로 밀어낸다. 가만히 귀를 대면 수많은 악기가 조화를 이룬 어우러짐의 공명(共鳴)이다. 나무가 악기처럼 울면서 황사(黃沙)도 꽃으로 피어내는 이치를 설법한다. 그렇기에 나무는 생애를 전부 우는데 쓴다. 한시도 울지 않으면, 흔들리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는 경전을 완성한다. 나무가 악기인 것은, 그 많은 노래를 흘리고도 이마를 흥건히 적실만한 신명이 남아 있다는 것. 사람도 울지 않고 봄을 맞이하는 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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