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모든 게 작았다. 복닥복닥 6식구가 단칸방에서 살았다. 무릎걸음으로 몇 걸음만 가면 벽이 나왔던 방이었다. 아랫목 윗목의 개념도 굳이 필요치 않았다. 그럼에도 아궁이에서 제일 가까운 아래쪽은 아버지 자리였다. 동그란 양은 밥상에 아버지와 사남매가 앉고 나면 어머니는 모로 앉아야만 했다.
몇 가지 찬도 없었지만 허기 앞에서 게정은 사치였다. 그러니 우리는 상을 내오기가 무섭게 밥그릇을 순식간에 비워냈다. 그렇게 작은 방이었음에도 겨울이면 고구마 둥우리가 윗목을 차지했다. 고구마는 허기진 배를 채워줄 식량이었으며 주전부리이기도 했다. 식구들은 더 좁아진 방에서 몸을 비비며 그렇게 온기로 추위를 이겨냈다.
슬레이트 지붕에 벽은 흙벽돌집이었다. 방문도 사람 하나 빠져나갈 만큼의 외짝 문이었다. 문에 비해 문고리는 꽤 커서 열고 닫을 대면 삐거덕, 타탁 소리가 요란했다. 창호지를 바른 방문에 어느 해 어머니는 코스모스를 함께 넣고 바르셨다. 꽃을 무척이나 좋아 하셨던 어머니셨다. 방문에 새긴 코스모스는 달밤이면 그 빛이 오묘했다. 나는 환한 낮보다 밤에 보는 문을 좋아했다. 몸을 방문 쪽으로 향하고 방문에 피어나는 코스모스를 바라 보다 보면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었다.
방도, 집도 마당도 작았던 그 집이 커 보이던 때가 있었다. 그건 눈곱재기 창 때문이었다. 겨울이면 단칸방의 추위는 대단했다. 방문이 열리면 밖에서 서성이던 찬바람이 죄다 몰려들어와 온기를 싹 걷어 가 버렸다. 그러니 우리 형제들은 밖을 나가려 들지 않았다. 눈곱재기 창은 우리 형제들에게 또 다른 세상을 비쳐주는 통로였다. 눈이 소리 없이 소복소복 쌓이는 날도, 주룩주룩 비가 오는 날도, 바람이 나무들을 흔들고 잎들을 몰고 다닐 때도 우리는 눈곱재기 창을 들여다보며 속닥속닥 댔다.
눈곱재기 창으로 보는 세상은 적막했지만 묘하게 거대해 보였다. 한밤중 오줌이 마려워 잠이 깨면 눈곱재기 창으로 밖을 염탐했다. 캄캄한 암흑, 저편에 귀신이 서 있을 것만 같아 결국엔 곤히 잠든 어머니를 깨워 앞장세웠다. 또 어느 날에는, 밤새 내린 도둑눈이 온 세상을 덮어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곤히 잠든 식구들을 요란을 떨며 깨우기도 했다. 사물을 분간 할 수 없도록 폭설이 내린 날은 이 걱정 저 걱정을 하며 몇 시간을 창 앞에서 떠나지 못했다. 산을 내려온 토끼가 눈구덩이에 빠질까, 새들이 날아가다 눈 속으로 떨어질까 하는 생각에 먼 산과 하늘을 살피느라 하루해를 허비했다.
문을 열지 않아도 밖을 볼 수 있는 창, 안과 바깥을 연결하는 소통의 창, 눈곱재기 창이다. 요즘은 반사유리가 과거 눈곱재기 창의 역할을 대신 한다. 하지만 안에서는 밖이 잘 보이지만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 다는 점은 같을지 모르나, 은은한 창호지에 작게 만들어 붙인 눈곱재기 창의 미덕을 반사유리가 어찌 흉내나 낼 수 있을까 싶다. 투명하고 명확해야하며 빠른 판단이 요구되는 요즘, 어쩌면 눈곱재기 창은 시대에 뒤떨어진 과거의 유물일지도 모른다.
눈 내리는 풍경을 통 창으로 볼 때면 숨이 멎을 만큼 가슴이 벅차고 아름답다. 허나, 눈곱재기 창으로 마주하는 눈 오는 날은 통 창과는 비견하지 못할 만큼 성스럽다. 나는 그 작은 창을 볼 때면 숨을 참곤 했다. 그 순간만큼 적막하고 고요함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작지만 은밀하지 않은 창이었다. 사락사락, 눈의 발걸음이 보이고, 하얀 누에가 고치를 짓는 소리가 보였다. 눈곱재기 창의 마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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