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이슬
아침 이슬
  • 김은혜 수필가
  • 승인 2023.06.01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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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은혜 수필가
김은혜 수필가

 

필리핀 바기오에 두 달 머무는 동안 아침마다 우리 부부는 산책했다.

산책길 옆 풀밭에 온통 동그란 이슬방울이 맺혀 있다. 아침 햇살이 내려앉으니 우리에게 윙크하듯 오색빛깔로 깜빡인다.

반겨줌이 고마워 동그란 이슬방울에 손가락을 내밀어 살며시 대면 찰싹 달라붙는다.

몇 번이고 반복해 보지만 한 번도 내 손가락을 거부하지 않는다. 이 모습은 꼭 사랑에 굶주린 아기가 엄마 품이 그리워 울다 엄마를 보는 순간 달려와 찰싹 안기는 모습 같다고나 할까.

가녀린 풀잎도 찾아와 준 이슬이 고마운지 감당할 만큼의 무게를 달고 힘을 과시한다.

그러다 힘이 들면 보이지 않는 잎자루의 진동으로 또르르 굴려 떨어뜨리면, 키 작은 둥근 풀잎은 깨질세라 물방울을 잽싸게 받아 머리에 인다.

그러다 자기도 힘들면 대지 위로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아침이슬의 생명은 애석하게도 참 짧다. 알알이 맺힌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햇살이 퍼지기 전 우리는 서둘러 종종걸음으로 집을 나선다.

이슬의 삶은 불과 몇 시간뿐이다. 내일이 없는 하루살이의 인생보다도 더 짧다.

물방울은 자기 인생이 짧다는 걸 인식해서인지 아침 햇살을 맞이하면 곱디고운 빛깔로 해맑게 반짝이기도 하고 눈부시게 빛나는 고운 무지갯빛도 만드나 보다.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들의 삶이 마냥 행복하게 보인다.

풀잎 끝에 연 이슬은 가득하지만 넘치지도 않고,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보이지만 떨어지지도 않고 줄줄 흐르지도 않는다. 그리고 아주 작은 이슬방울 속에는 내가 사는 세상도 나도 들어 있다. 이토록 아리따운 이슬방울은 한낮의 따가운 햇볕이 온 누리에 내려앉으면 미련 없이 햇살 등에 업혀 투명한 공기 속으로 기화하여 어디론가 소풍을 떠난다.

문인들과 양수리 두물머리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곳에는 관광객을 위해 커다란 비닐하우스 속에 작은 자연의 계곡을 만들어 놓고 그 동산에 풀잎이 작은 풀을 심었다.

풀잎마다 이슬을 맺히게 하려고 호수로 물을 뿌렸다. 그리고 햇빛을 대신해 전등을 켜놓았다. 송골송골 맺혀 있는 이슬방울이 전등 불과 마주치니 빛을 반사한다. 흡사 은방울같이 보인다.

잎도 이슬도 작아 은가루가 반사하는 빛 같아 멀리 퍼져 나가진 못해도 연한 무지개까지 만들어 보여준다.

오색 유리구슬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것 같다. 또 어찌 보면 밤하늘 별들이 땅으로 내려왔나 할 정도로 보는 이를 무아지경에 빠지게 한다. 누가 별을 보고 하늘빛이라 표현한다면, 나는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이 햇빛을 만나 반사하는 빛을 땅의 빛이라 말하련다.

아침마다 천지에 저뿐인 양 풀잎에 요염하게 앉아 온 우주를 닮고도 흐르지 않는 바기오 이슬방울처럼 나도 이 땅에서의 삶을 이웃이 원하면 언제든 어디든 그들 속으로 들어가 더불어, 아니 아름답게 살다가 저 이슬처럼 바라보는 이에게 기쁨을 선물하고 싶다.

그러다 햇살이 가자고 하면 투명한 공기 속으로 조용히 돌아가듯 나도 미소를 띤 얼굴로 행복했었노라며 내 본향으로 떠나야지. 마음을 다독이는데 무의식중에 입에서는 `꽃잎 끝에 달려 있는 작은 이슬방울들 빛줄기 이들을 찾아와서 음 어디로 데려갈까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비야 네가 알고 있나 무엇이 이 숲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노래가 흐른다.

소녀가 되어 자연을 찬양하는 아내의 노랫소리를 듣는 남편도 소리 없이 사색에 잠기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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