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승인 2023.06.01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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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어느 단체를 퇴사하고 우연한 기회에 단체 대표님과 밖에서 식사할 자리가 있었다. 옆 사무실의 대표님도 함께 오셨는데 그때 받은 산세베리아 스투키가 6년 동안 안 죽고 살아있다. 꽃이든, 허브 종류든, 채소든, 심지어 내버려 둬도 그냥 큰다는 다육이까지 사놓고 안 죽여 본 식물이 없다. 알 수 없는 죄책감은 덤이다.

그래도 아이 셋을 키운 걸 보면 양육에는 아주 젬병은 아닌 듯하다. 물론 우리 집 아이들은 엄마의 방임이 한몫했다. 아이들이 가끔 집에 동물을 키워보자고 할 때마다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말 못하는 동물은 사람보다 더 손이 많이 갈 것 같았고 아무도 없는 집에 버려진 듯 갇혀 있을 생각을 하면 너무 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뒤에 따라오는 온갖 궂은일(식물보다 훨씬)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우리는 소나 돼지나 닭이 제 수명대로 사는 것을 거의 보지 못한다. 그전에 도살되어 식탁에 오르기 때문이다. 어떤 동물은 앙증맞고 작게 태어나 반려동물로 명명되어 대체로 편안한 생을 누리다 죽지만 어떤 동물은 그저 가축으로 태어나 도살장에서 죽는다. 인간사가 불공평하듯 동물의 세계도 불공평하다. 얼마 전 『이빨 사냥꾼』 그림책을 볼 기회가 있었다. 서점에서 흘리듯 들추었는데 색감이나 내용이 충격적이라 잔상이 남는다.

인간이 상아 채취를 위해 코끼리를 무분별하게 마구 학살하는 사실을 바탕으로 작품은 코끼리가 총칼을 들고 벌거벗은 아이를 사냥해서 이빨을 뽑아 여러 사치품을 만드는 내용이다.

아이가 꾸는 꿈에 불과했다는 결말이지만 던져주는 메시지는 강렬했다. 실제 아프리카에서는 코끼리가 멸종위기에 처하자 1989년 공식적으로 상아 채취를 금지했지만 현재 다시 밀렵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지구인은 동물에 대한 도덕적 지위를 인정하는데 매우 인색했다. 데카르트는 동물은 정신이나 마음이 없는 자동기계장치라고 생각했기에 쾌나 고통을 느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칸트도 그랬다. 칸트에게 인간은 수단이 아닌 그 자체가 목적적인 존재이지만 동물은 수단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근대를 넘어 오스트레일리아 철학자 피터싱어는 벤담의 공리주의를 동물권과 관련하여 뜻밖의 해석을 내놓는다. 공리주의의 명문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늘리는 행위가 옳다는 19세기의 이론은 매우 급진적인 사상이었고 현대 민주사회로 들어가는 관문이 되었다. 그는 『동물해방』에서 이렇게 묻는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에서 최대다수가 왜 꼭 인간이어야 하나?” 동물도 고통받지 않을 권리, 즉 동물권이 있다는 것이다. 당신은 피터싱어의 말에 얼마나 공감하는지.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적 의미의 최초의 동물보호법을 만든 나라는 나치 독일이다. 히틀러가 동물을 좋아했기 때문이라도 하는데 이것도 참 괴기스럽다.

식물 얘기로 시작해 동물권까지 좀 멀리 온 기분이다. 이즈음에 인간적이라는 말이 마음에 남는다. 정말 인간적인 게 무엇일까. 인간만이 목적이 아닌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을 목적으로 상정하고 존엄을 지켜주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자신에게 묻는다. 하얗고 예쁜 이빨을 사치품 때문에 생명을 죽이고 먹거리를 위한 무자비한 공장식 축산에 대한 죄책감이 없다면 던진 부메랑이 돌아오듯이 우리에게 재앙으로 올지도 모른다. 모쪼록 모든 자연 세계를 대할 때 인간적이기를. 동식물 모두 지구 안에서 사는 날까지 존엄스럽게 지내기를, 꿈같은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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