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너의 이름은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3.05.2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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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매학기 3~4 강좌 정도 강의 한다. 학부 강의는 그 중 절반 정도이고, 학부 강의에서 만나는 학생의 수는 학기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개 한 강의 당 20명 내외다. 대부분은 전공 강의라서 이미 아는 학생을 만나게 되지만, 이번 학기처럼 교양 강의를 열게 되면 우리 학과에 소속되지 않은 처음 만난 학생들이 많아 얼굴을 익히는데 애를 먹곤 한다. 학기 초 인사하는 수강생을 알아보지 못해 얼굴이 붉어질 때가 간혹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학생들 편에서도 상황은 비슷한 모양이다. 첫 강의시간에 만난 학생에게 인사를 했다가 학생이 알아보지 못해 난감했던 기억도 있다. 한 학기에 20학점 내외를 들으니 매 학기 10여 명 가량의 교수나 강사를 만나게 될 것이고, 학생이나 교수나 처음 만난 사람을 단번에 기억해 내는 것은 쉽지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나름 새 학기가 되면 학생들 이름을 첫 주에 다 외워버리리라 계획을 세우곤 한다. 그 일이 성사되기 어려운 것은 고유명사를 자꾸 잊어버리게 되는 나이 탓이다.

크리스마스트리로 잘 알려진 전나무는 다른 이름으로 젓나무라고도 한다. 소나무의 솔방울, 잣나무의 잣에 해당하는 전나무 구과(이걸 젓이라고도 부른다)와 줄기의 흰 송진이 마치 흰 젖과 비슷해 보인다고 해서 부르게 된 이름이다. 사실 전나무는 옆으로 작은 가지와 잎을 내서 퍼져 나는 잎의 납작한 모양이 음식의 전과 같이 착착 포갤 수 있어 `전'나무라는 설도 있다.

너무 상투적인 말이지만, 새 학기가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종강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캠퍼스 정원을 산책하며 식물의 특성, 식재, 조경, 문화 등을 알아보자고 시작한 `비밀의정원' 강의도 두어 번의 강의 후면 종강이다. 학생들은 이 강의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학생들의 답은 식물의 이름이었다.

이름을 안다는 것, 학생은 선생에게 알려진 이들이라는 한 철학자의 말이 떠오른다. 안다는 것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그저 피상적으로 아는 것도 아는 것이지만, 선생에게 알려진 학생은 그저 피상적으로 안다는 것이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상태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알고 나면, 모르는 상태로 돌아가기가 어렵다. 큰 아이는 어릴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다. 엄마가 읽어주는 책도 좋아했지만 혼자 읽고 싶어 했다. 한글을 가르쳐 달라고 여러 번 조를 때 나는 아이를 안고 귀에 대고 가만히 말했다. 비밀이라도 전하듯 말이다. `아가, 한 번 글을 깨치고 나면 다시는 글을 모르던 때로 못 돌아가는 걸. 그래도 배우고 싶니?' 아이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에 잠시 고민하더니 그래도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는 글을 모르던 때로는 돌아가지 못했다.

안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등산을 가도, 들판을 걸어도 식물들이 나 좀 보라고 부르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나 딱총나무잖아. 그래 접골목이라고 하지. 흰 사슴이 너를 뜯어 먹고 저는 다리가 나았다지? 여기 백송도 있어. 줄기가 평범한 소나무와는 다르네. 군복 무늬 같기도 하고. 신나무도 있었네. 가을에 얼마나 고운 빛을 보여 줄거니? 등등 재잘거리는 나무들과의 이야기 덕분에 혼자 걸어도 심심치가 않다.

이번 학기엔 두어 주 만에 모든 수강생의 이름과 얼굴을 아는데 성공했다. 도현이, 기표, 의영이, 혜인이, 민서와 늘 함께인 모리까지. 다시는 모르던 때로 돌아갈 수 없는 학생이 열아홉 명 그리고 강아지 한 마리. 지금 내 수강생들이다.

나도 학생이었던 시절, 나무 이름을 알려주시던 선생님 생각이 난다. 선생님은 여전히 내 생각 속에 살아계신다.

나무는 어디에나 있고, 나무를 볼 때마다 언제나 선생님이 떠오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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