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 대작
산속 대작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3.04.24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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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온갖 꽃들이 나름의 자태를 뽐내는 봄 산은 꾸미지 않은 공연장이다.

사람들은 꽃이 피는 것에 환호하고, 꽃의 퇴장에는 아쉬움의 박수를 보낸다. 이러한 자연의 공연장에서 격의 없는 친구와 마주 앉아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꽃들의 공연을 감상하는 행운은 아무에게나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당(唐)의 시인 이백(李白)은 행운아임이 분명하다.


산속 대작(山中對酌)

兩人對酌山花開(양인대작산화개) 두 사람이 술을 주고받는데 산에는 꽃이 피네
一杯一杯復一杯(일배일배부일배) 한 잔 한 잔 또 한 잔
我醉欲眠君且去(아취욕면군차거) 내 취해 잠들려 하니 그대 잠깐 돌아갔다가
明朝有意抱琴來(명조유의포금래) 내일 아침 뜻있으면 금을 안고 오시게

시인의 거처이기도 한 산속은 봄꽃의 공연이 한창이다. 좋은 철을 맞아 좋은 곳에 있노라니 술 한 잔이 없을 수 없다.

마침 마음 통하는 친구가 근처에 살고 있던지라, 그를 불러 둘이서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주변 분위기가 아주 그만이다.

산에 꽃이 피어 있는 것이다. 꽃 있고 술 있고 벗 있으니 시인은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이리라.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술잔을 계속해서 주고받는다. 한 잔 마시고 한 잔 따르고 또 한 잔 마신다.

말은 하지 않는 것은 산에 꽃이 핀 것이 술을 마시는 이유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술을 매개로 하여 두 사람이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리라. 그렇다고 두 사람이 결코 술을 탐하지는 않는다. 술이 술을 마시는 상태에 이르기 전에 적당한 선에서 그칠 줄 안다.

시인은 대작하던 친구에게 술에 취해 잠들려 하니 잠깐 갔다가 내일 아침에 생각이 동하면 그때는 금(琴)도 챙겨 오라고 말한다. 내일도 꽃과 술은 변함없이 있을 터이고 여기에 음악까지 곁들여지면 금상첨화의 봄 잔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꽃은 한 철이다. 피는가 하면 어느새 지는 것이 꽃 아니던가? 자연에 묻혀 살다 보면, 꽃 피는 때가 얼마나 소중한 때인지를 절실히 깨닫게 된다. 그러니 이때를 놓치지 않고 즐길 줄 아는 삶이 지혜로운 삶이다. 산속의 소박한 거처에 마음 맞는 친구를 불러 술을 대작하면서 주변 여기저기에 핀 꽃을 바라본다면, 그 순간 그 삶도 덩달아 활짝 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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