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평오를 묻는다
국평오를 묻는다
  • 이영숙 시인
  • 승인 2023.04.20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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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방송사들이 문제예요. 대한민국 국민 평균 수능 5, 6등급이 60%나 되는데 방송매체는 우리와는 먼 세상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가끔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요. 그래서 자꾸만 게임세계로 빠지게 돼요. 거기엔 노력한 만큼 점수를 올릴 수 있고 비교당하는 우울감도 못 느끼니까요.”

노력한 만큼 점수를 올릴 수 있는 공간이 게임 세계라니 가슴 아픈 일이다.

1978년생 김의경 작가, 자전적 소설 『청춘 파산』으로 데뷔하여 큰 파동을 일으켰던 그의 소설 『쇼룸』 중 단편 「물건들」로 북 토크를 진행하는 중에 1학년 학생이 던진 말이다. 쇼룸은 어떤 제품이나 회사를 홍보하기 위해 상품을 진열해놓은 전시장으로 이를테면 자본주의의 상징적 공간이다. 주인공의 다이소 쇼핑 중독 행위를 보면 씁쓸함을 떨치지 못하지만, 자본주의 구조에서 1루부터 출발한 젊은이들의 생존전략인 것 같아 공감도 간다. 일주일이면 두 번씩 다이소를 서성이고 월급날이면 값싼 물건을 양껏 사들이며 쇼핑중독인 주인공, 그 허기를 만들어낸 행위를 시대 구조에서 찾는다면 모순일까.

“마흔 정도면 자리 잡힐 거고. 그때 다섯 살쯤 된 애를 입양하는 건 어때? 난 핏줄에 대한 집착 그런 거 없어. 그런 건 다 환상일 뿐이다.” (37쪽)

옆길, 샛길, 앞문, 뒷문 우후죽순 뚫릴 대로 뚫린 불공정한 시대를 살아가는 주인공의 푸념이지만, 이 시대 젊은이들의 대표적인 생각으로도 볼 수 있다. 이 불공정한 시대를 조장한 잘못된 윗선들의 잘못된 권력 남용과 악의 평범성에 가슴을 치받는다.

이어서 다른 학생이 얼마 전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었는데 이 세상은 노력만이 답은 절대 아니라고 했다.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 부제목도 능력이 아니라 실력으로 단어 바꿈을 해야 맞고 모든 것은 실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개미처럼 열심히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고 베짱이처럼 놀기만 한다고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 부분의 요행과 운이 작용하니 이 시대 공정과 정의를 네거티브로 일축했다. 자신은 부모가 능력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서 감히 옆문과 뒷문 입학을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라 죽기 살기로 공부해서 국립대 정문만을 노렸다고 한다. 참 공정하지 않은 세상이라 공부하면 뭘 하나라는 딜레마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독서를 통해 사유의 지평을 넓혀가는 즐거움이 크다니 어떤 위로도 건넬 수 없었다. 전공 과제가 산더미인데도 하루 독서하는 시간을 빼놓지 않는다니 염치없지만 그런 학생이 훗날 대표자가 돼서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를 기대한다.

“국평오를 아시나요?”

우리나라 국민 평균 삶의 수준이 5등급인데 모든 구조가 1,2 등급 중심으로 움직이니 단연 국민 행복지수가 밑바닥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모든 문제를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에서 찾는 데 문제는 자본주의 구조나 지금의 정책 시스템을 디테일하게 점검해야 한다는 항변이다.

계약 결혼이라는 말도 낯설지 않은 시대, 대한민국 출생률이 지금은 0.7%이지만 이젠 그마저 제로 상태가 될 날도 멀지 않다니 대소선후(大小先後)할 정책이 시급하다. 그들은, 아니 우리는 왜 다이소를 찾는가? `다이소'라는 상징적 공간과 `물건들'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주는 일침을 무겁게 떠올린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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