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자연의 삶
무위자연의 삶
  •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23.04.20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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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노자가 도덕경을 통해 강조한 도교의 핵심 가르침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무위자연의 삶은 언제 어디서나 억지로 애써 함이 없이 절로 절로 이뤄지는 자연의 행복한 삶을 의미한다. 무위자연의 삶을 불교는 그 무엇에도 걸림 없는 무애자재(無碍自在)한 삶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기독교적 표현으로는 내 안의 온갖 주견을 비운 뒤 내 뜻이 아닌 하늘의 뜻에 따른 성령의 도구로 온전하게 쓰이는 가운데 범사에 감사하는 성령 충만의 삶이 무위자연의 삶이다.

어떤 갈등도 없이 물처럼 유유자적 흘러가면서 그 무엇에도 걸림 없는 무위자연의 무애자재한 삶을 누리기 위해선 온갖 생각을 쉬고 또 쉼으로써 기억 창고인 업식에 쌓여 있는 자신의 주견들을 비워내고 마음을 0점 조정하는 일이 전제돼야 한다.

마음을 0점 조정함으로써 오랜 세월 갇혀 지내던 자신만의 어두운 우물을 박차고 나오면 비로소 맑고 밝은 지혜가 발현되면서 목전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정견이 가능해진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무위자연의 삶을 앞을 다투지 않고 유유자적 흐르는 물에 비유하면서 상선약수(上善若水) 즉, 최고의 선(善)은 물과 같다는 가르침을 강조한 바 있다. 물처럼 자연스럽게 낮은 곳으로 흘러 끝내 바다에 이른 뒤 수증기가 되어 하늘 높이 올라가는 무위자연의 삶은 그 어떤 가치관이나 사상(思想)에도 물들지 않은 갓난아기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의 목전 상황을 직시할 때 가능해진다. 자신의 욕망과 이득만을 추구하지 않는 0점 조정된 나 없음의 지공무사한 마음에서 정견(正見)이 가능하고 정견이 전제되어야만 비로소 정행(正行)이 가능한 무위자연의 삶을 사서삼경 중 하나인 `중용'(中庸)은 다음과 같은 구절을 통해 강조한다.

“喜怒哀之未發(희로애락지미발) 謂之中(위지중) 發而皆中節(발이개중절) 謂之和(위지화) 즉, 희로애락이 일어나기 전이 무심한 중(中)의 마음이며, 중의 마음에서 일어난 생각과 감정 및 행동은 처한 상황과 딱 들어맞으니 화(和)라고 한다는 가르침이다. 생각과 감정을 쉬고, 그 쉬는 일마저 쉼으로써, 어떠한 지식이나 주의(主義)-주장(主張)과 희로애락에 물들지 않은 텅 빈 무심(無心) 및 그 어느 쪽으로도 치우침 없는 지공무사한 마음이 바로 중용에서 강조하는 중(中)의 마음이다. 결국 불교에서 말하는 `나 없음'의 무아(無我)를 깨닫는 일과 기독교에서 말하는 내 안의 온갖 주견을 비우고 하늘의 뜻을 따르며 성령의 도구로 쓰이는 심령이 가난한 자로 거듭나는 일과 중(中)의 마음을 회복하여 군자가 되는 일과 물처럼 걸림 없이 흐르며 무위자연의 삶을 살아가는 도인(道人)이 되는 일이 대동소이함을 알 수 있다.

맑고 밝은 지혜가 있다면 오토매틱 기어를 갖춘 자동차처럼 언제 어디서나 갈등 없이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되지만 오토매틱이 아닌 수동 기어라고 해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오롯하게 깨어서 자동차를 운행하면 된다. 언덕길을 오르는데 너무 고단 기어인 까닭에 시동이 꺼지려 한다면 즉시 알아차리고 중립으로 돌아간 뒤에 처한 상황에 맞는 저단의 기어를 넣고 운행하면 된다.

언제 어디서나 그 어떤 색안경도 끼지 않은 나 없음의 무심(無心)한 중립 상태로 회귀하는 힘을 키워가다 보면, 머잖아 오토매틱 자동차처럼, 함이 없이 스스로 그러한 무위자연의 행복한 삶을 누리면서, 물처럼 흐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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