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때는
나 때는
  • 김은혜 수필가
  • 승인 2023.04.19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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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은혜 수필가
김은혜 수필가

 

초등학교 손자 3학년 1학년 유치원생 세 명과 한국교원대 교육박물관에 갔다. 널따란 공간에 학생을 기다리는 선생님과 가방을 멘 서너 명 학생이 교실로 향하는 조형물을 세워놓았다. 골마루를 들어서니 정면에 검정 치마 흰 저고리 입은 여학생과 바지저고리를 입은 남학생이 걸레를 바닥에 놓고 엉덩이를 하늘로 쳐들고 골마루를 닦는 커다란 그림이 걸렸다. 그림 앞에 서서 기억이 문을 여니 어제처럼 아스라이 보인다. 나 때는 저렇게 청소했었다.

3-2반 팻말이 걸려있는 교실로 들어섰다. 흑 칠판이 있어야 할 자리에 스크린이 걸렸는데 그 속에서 단발머리에 검정 고무신을 신고 치마를 펄렁거리며 고무줄놀이한다. 형용할 수 없는 황홀감에 취해 들여다보고 있는데 “할머니, 할머니도 저런 옷을 입고 고무줄놀이하셨나요?” 아이들이 나를 깨운다. “응 나 때는 저런 옷을 입고 저렇게 놀았지”

교실 한 복판에 양은 도시락을 올려놓은 난로가 있다. 이 양은 도시락은 교무실에서나 볼 수 있는 귀한 물건이다. 그때가 한국전쟁이 막 끝난 후였다. 우리는 점심시간 종이 땡그랑땡그랑 울리면 약속이나 한 듯 햇볕이 잘 드는 양지쪽에 모여 배고픈 내색 없이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지. 그때의 수런거리던 소리가 그립다. 함께한 친구가 있었기에 배고픔을 잊고 이야기할 수 있었지, 싶다. 3학년 손자는 73년도에 펴낸 3-2학기 산수책에서 곱셈 공식이 자신의 수학 공식과 다른 점을 발견한다. 신기한지 문제를 풀겠다며 책상 위 널려있는 공책과 연필을 들고 앉는다. 연필로 답을 쓰려는데 글씨가 안 써진단다. “혀끝에 대었다 침이 발라진 후에 쓰렴” 이해가 가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하더니 포기하고 가지런히 놓고 일어선다. 위생상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판단했기 때문이겠지. 나 때의 연필심은 그렇게 해야 써졌다.

한 아이가 숨넘어가게 달려와 “할머니 종이 주세요. 빨리요 빨리” 가방을 열어 메모장을 뜯어주었다. `참 잘했군요. 보통이군요, 노력하세요,' 도장을 찍는다. 저마다 한 장씩 들고 와 보관하란다. 이 도장은 저 아이들 아빠 엄마 학창 시절에 숙제 검사 도장이다. 이것 역시 저들에게는 보물이다.

나 때는 숙제나 과제물을 안 가지고 오면 단상에 세워놓고 종아리에 피멍이 들도록 때렸다. 조회 시간에 호랑이 선생님 손에는 회초리가 늘 들려있었다. 참 많이들 맞았다. 현재까지 그런 체벌이 있으면 학부모 등쌀에 강단에서 배겨날 수 있겠지 싶다.

교실 옆 벽에는 문방구 가게가 그려져 있고 만화방에는 일지매, 홍길동전도 있다. 담 모퉁이에는 달고나를 만들어 놓고 쪼그리고 앉아 있는 아저씨도 있다. 개구쟁이 손자는 벽화 속 아저씨 앞에 서서 손을 내밀고 “얼마에요 하나만 주세요.”란다. 예로부터 문방구는 학생들의 방앗간이었는데, 요즘은 문방구가 사라지고 있단다. 이 방앗간에는 쫄쫄이 같은 먹을거리도 있지만 준비물을 잊고 가도 문방구에 가면 학용품은 물론이요, 실내화 운동복까지 다 있다.

오늘 아이들은 이 박물관에서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깨달았나.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가 공기놀이, 땅따먹기, 자치기, 고무줄놀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딱지치기, 팽이 돌리기, 새끼줄을 둥글게 말아 공대용으로 차던 사내들까지 보았다. 그 시절 놀이는 활동적인 놀이었는데, 요즘은 놀이도 교육도 앉아 두뇌만 사용하는 게 많아졌다.

뜬금없이 뒤안길로 사라져 역사가 된 나 때 놀이가 오징어 게임 영화로 제작되어 외국에서 히트했단다. 다음엔 이 아이들과 오징어 게임 영화를 관람하고 와 함께 놀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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