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주요 운송로 남한강
고대 주요 운송로 남한강
  • 이미란 충북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1팀장
  • 승인 2023.03.26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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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문화유산의 이야기
이미란 충북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1팀장
이미란 충북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1팀장

 

남한강은 고대부터 운송 수로로 사용됐다. 상류지역은 정선, 영월, 평창, 단양, 제천, 충주, 원주 등의 침식분지가 분포하고 중하류에는 이천, 여주평야, 서울 등 평야지대가 분포하고 있다.

남한강은 한반도의 기본 교통축을 형성하는 간선도로로 계립령(조령), 단양은 죽령 등이 영남지방과 기호 지방을 연결하는 남북교통의 핵심축을 이루고 있다. 이중 계립령로를 통해 충주-문경구간을 육로로 연결하면 남한강 수로와 낙동강 수로가 서로 연결된다.

고대교통로로 중요한 역할을 한 남한강은 가항 구간이 길어 수로로서 가치가 매우 높았다. 하지만 강은 계절별 수위의 차이가 크고 여울이 많고 수심이 깊지 못해 경기도 지역에서 제천-단양까지 진입하는 데는 계절적 차이가 크게 작용했다. 반면 충주·제천지역까지는 유량이 많아 계절별로 이용이 큰 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충주는 고려시대 덕흥창, 신라 때 국원소경, 고구려의 국원소경이 설치돼 있어 수로를 통한 배의 왕래가 활발하게 이뤄졌음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국원성 및 국원소경은 군수지원을 목적으로 활용된 것도 추정해 볼 수 있다. 이는 충주지역에 삼국시대에 축조되어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던 산성(충주 장미산성, 탄금대 토성, 청풍 망월산성, 단양 적성산성, 온달산성)이 곳곳에 남아있어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임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남한강은 군사적 목적뿐만 아니라 교역통로로 사용되었는데 남한강변에서 확인된 마한~백제 유적을 통해서 밝혀지고 있다. 교역통로로서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유적은 충주 탑평리 유적, 충주 탄금대 유적 등이 있고 이외에도 경기도에서 충주지역으로 진입하는 관문에 해당하는 원주지역에서 조사된 원주 법천리 유적이 있다.

충주지역이 이렇게 고대 교역통로로 사용된 이유는 고구려·백제·신라의 접경지에 있어 지리적 중요성이 높았고, 고대 남한강 유역의 가장 큰 철 생산지가 위치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충주지역은 고려시대에도 다인철소가 자리 잡고 있던 지역으로 최근 충주 탑평리 유적, 탄금대 토성, 충주 칠금동 유적 등에서 마한에서 백제시대에 이르는 다수의 집자리와 제철관련 제련노, 단야로 등 제철관련 유구가 출토됐다. 조사된 생활 유적은 제철과 관련된 집단이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원주 법천리 고분군에서는 바다 생선뼈(조기, 상어, 민어, 동 등)가 출토되었고, 중국 동진제로 추정되는 양모양 청자가 출토됐다. 이와 같은 고고학적 조사 결과를 통해 남한강이 소금, 바다생선, 철 등을 백제로 운반하는 교통로로 활용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마한~백제시대에 남한강유역이 경기도와 충주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군사경제적 위치를 점하고 있던 것을 알 수 있다.

남한강 유역은 백제와 고구려 신라 유적이 다수 확인됐다. 이를 통해 남한강유역에 있는 충주-제천-단양지역은 말갈과 마한에서 시작해 백제, 고구려, 신라 등 고대 삼국이 남한강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대립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유적을 간직한 남한강은 최근에 강의 양안을 개발해 남한강 자전거도로를 조성하였다. 이 도로 또한 고대와 마찬가지로 경기도(남양주-양평-여주)부터 강원도 원주시-충청북도 충주시까지 연결돼 고대시대 사용된 고대인의 운송로를 따라가 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앞에서 언급했던 고대 유적들도 전시관과 공원 등으로 조성되어 있어 가깝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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