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가 더 문제
강도가 더 문제
  •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 승인 2023.03.26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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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여는 창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참 황당하다. 주당 노동시간 개편에 대한 정부 정책 때문이다. 헷갈리는 것은 누가 시켰는가다. 언론 보도를 보면 분명 대통령 지시로 시작된 것인데 격노하는 것을 보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전형적인 유체 이탈이다.

주당 노동시간도 이상하다. 처음에는 69시간이라고 하더니 60시간 이상은 안 된다고 한다.

국민 삶에 영향이 지대한 정책 설계가 엉터리다. 한마디로 준비 부족이다. 그리고 모호성이다. 누구를 위해 노동시간을 바꾸려는 것인가? 노동자를 위해서라고 하는데 당사자들은 싫다고 한다. 대표적인 거짓말이다.

노동시간은 노동과 여가의 문제다. 인류의 역사는 노동과 여가가 벌인 투쟁의 역사다. 노동은 생존을 위한 `필요시간'이고, 여가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자유시간'이다.

산업화 이전 시간 사용의 주체는 자연이었다.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쉬었다. 날씨로 인해 농사가 어려울 때는 몇 개월의 여가시간도 있었다.

산업 혁명 이후 기계 시간이 등장한다. 산업은 땅에서 공장으로 옮겨지고 사람들은 농촌에서 도시로 이사했다.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강제된 긴 노동시간이 필요했다. 어른뿐 아니라 어린이도 노동에 투입되었다.

여가시간 확보를 외치는 노동자와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세력 간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수많은 사람의 희생으로 노동시간이 법적으로 제한되기 시작했다.

길고 힘든 여정을 거쳐 `노동시간 제한 정책'은 전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우리나라도 민주 정부가 들어선 2000년 초기부터 힘든 사회적 논의 과정을 거쳐 노동에서는 `주 40시간 근무제'가, 교육에서는 `주5일 수업제'가 정착되었다.

그러나 주 40시간으로 근로시간을 제한한다는 당초 취지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

과도한 노동시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정부 때 주당 노동시간 40시간(8시간×5일)에, 연장 노동시간 12시간을 더해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하는 정책이 만들어졌다.

어렵게 정착된 이 제도를 현 정부는 사회적 논의와 준비도 부족한 채 바꾸려는 것이다.

정부는 노동시간만을 염두에 두는 것 같다. 그러나 시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강도'다. 똑같은 시간을 일해도 노동 강도가 높아지면 더 많은 휴식 시간이 필요하다. 법적 노동 시간은 줄었지만 노동 강도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더 좋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더 힘든 노동 강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높아진 노동 강도에 대응하려면 추가적인 여가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 생산성이 추락한다.

OECD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노동 생산성은 바닥이다. 혹자는 노동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노동시간이 길어질수록 시간당 노동 생산성은 내려갔다.

휴식으로 몸과 마음을 새롭게 충전하고 자기 성장의 기회를 얻지 못하면 서비스 품질이 낮아지고 불량률은 높아진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 강도를 줄이는 것이다. 강도를 낮추려면 노동시간을 더 단축해야 한다.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고 생산성이 높아지려면 반대로 가는 정책이 필요하다. 행복을 위해 돈도 필요하지만, 쉼과 휴식 건강과 자유는 국민에게 더 필요한 행복 자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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