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길을 낼 수 있도록
바람이 길을 낼 수 있도록
  • 김진숙 수필가
  • 승인 2023.03.22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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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김진숙 수필가
김진숙 수필가

 

이사하면서 새 소파를 장만하기 위해 가구단지를 뒤지고 다녔다. 소파하나 장만하는 일이 어찌 그리 어려운지 마음에 드는 것은 가격이 비싸고 가격이 적당한 것은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트집 저 트집 잡으면서 다니다 보니 이러다가는 영영 못 사지 싶은 생각이 들어 가격대비 적당한 것을 골라 값을 지불하고 소파 고르기를 끝냈다.

드디어 도착한 새 소파는 집안 분위기와 잘 어울려서 긴 시간 발품 판 보람을 느끼게 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용납할 수 없는 문제점을 발견했다. 소파가 너무 푹신해서 조금만 앉아 있어도 허리에 무리가 오는 것이었다. 평소에 허리가 아파 고생을 하면서도 푹신한 소파는 허리에 좋지 않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그 뒤부터 그렇게 공들여 고른 소파는 눈엣가시가 되어 나를 괴롭혔다. 앉을 수도 없는 것이 거실에 떡 하니 버티고 있으니 거대한 소파를 가슴에 얹고 사는 기분이었다. 괜스레 짜증이 나고 `저 소파를 어찌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잠도 오지 않았다.

소파 때문에 잠도 못 자고 고민을 하니, 보다 못한 남편이 해결책을 내놓았다. 소파를 버리자는 거였다. 버리면 그만인 것을 왜 쳐다보면서 끌탕을 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는 당장에 소파를 치워버렸다. `값이 얼만데' 하는 생각에 더 속이 상했었는데 버리고 보이지 않으니 그 아까움은 서서히 잊혀졌다. 가슴을 누르던 거대한 소파의 무게도 증발하듯 사라졌다.

그 후로 마음에 짐이 되는 물건은 눈 딱 감고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비싼 값을 치르고 산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도 쳐다보면서 두고두고 속상하기보다는 미련 없이 버리는 길을 선택했다. 사들고 올 때의 설렘도 좋았지만, 버리고 난 뒤의 홀가분함도 나를 자유하게 했다.

버리지 못하고 계속 쌓아 놓기만 해서 쓰레기더미가 된 집을 TV에서 보았다. 이것도 필요할 것 같고, 저것도 필요할 것 같아서 주워 모은 것들이 주방을 채우고, 침실을 뒤덮고, 드디어는 출입문조차 가로막아서 집은 거대한 쓰레기더미가 되어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이 와서 며칠을 치우고서야 집은 서서히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집주인에게는 다시 안방이 생기고, 주방이 생기고, 맘 놓고 드나들 수 있는 대문이 생겼다.

과거의 상처로 인해 평생이 지옥인 사람들을 제법 보았다. 그 상처의 크기를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잊어버리라고 어찌 섣불리 말할 수 있겠는가? 소파 하나 버리는 일과 그들의 상처를 버리는 일을 어찌 동급으로 놓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그로 인해 삶이 폐허가 된다면, 쓰레기에 갇혀 몸 하나도 들고 나기 버거운 집처럼 세상과의 소통이 어려워진다면, 이쯤에서 하나씩 버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버리는 재미는 제법 쏠쏠해서 하나를 버리고 나면 다음 것도 많이 망설이지 않고 버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쉬운 것부터 하나씩 버려보는 거다. 딸려오는 것이 있으면 옳다구나 같이 버려보는 거다.

물건이 들어찬 집은 주변에 도움을 청해 같이 치울 수도 있지만, 마음속에 들어찬 짐은 나 아니고는 누가 대신 치워줄 수도 없다. 그러니 어렵더라도 이쯤에서 하나씩 치워보자. 답답했던 마음에 햇살이 들 수 있도록, 바람이 길을 낼 수 있도록 나를 해방시켜 주자. 혹시 아는가? 바람 따라 꽃씨 날아들어 어느 한 쪽에 작은 꽃밭이라도 생겨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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