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감원역, 지금은 역말
옛날에는 감원역, 지금은 역말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3.03.2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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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몇 년 째 이곳 역말은 공사 중이다. 오래되고 낡은 집들 중 빈집은 군에서 사들여 부수고 새롭게 조성되는 중이다. 우리 가족이 이 마을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은 약 34년 전 무렵이다. 지금이야 우리 집 앞길이 소방도로가 되어 넓고 훤하지만 30년 전만 해도 좁고 지저분한 골목길에 불과했다. 우리 집 대문과 맞닿아 있던 옆집은 마당이 깊게 패어 있어 비가 오기라도 하면 바닥이 질척해 밟기가 쉽지 않았다. 그 집은 소를 키우기도 했는데 그 집 말고도 소가 있는 집은 여럿이었다.

역말은 사실 음성읍내에서도 낙후된 마을이다. 2019년 역말이 도시재생마을로 선정되었을 때 마을사람들이 기뻐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나도 도시재생 현장 활동가가 되어 2년 동안 마을 이곳저곳을 살펴보기도 했다. 그동안 바쁜 일상 탓에 마을 사람들과 소통을 할 기회가 부족했던 차였다. 낮에는 내 일을 하고 아침과 저녁으로 마을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내가 맡은 일은 마을 사람들을 만나 집수리에 대한 의견서를 받아내는 일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집인 듯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벽이 부식되어 위태롭거나, 비만 오면 빗물이 새어 수리가 급한 집들이 의외로 많았다. 사실 이곳 역말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감원역(坎原驛)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충주 연원도(連原道)의 소속으로 조선 초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유지되었던 곳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감원역에는 상등마(上等馬) 1마리, 중등마(中等馬) 5마리, 복마(卜馬) 1마리가 있었고, 역노(驛奴) 17명, 역비(驛婢) 5명이 배속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감원역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이 부근에서는 교통의 중심지였던 셈이다. 그런데 1894년 갑오경장 이후 고종 33년에 전국의 역들이 폐지되면서 이곳 감원역도 사라지게 된 것이다. 역참이 있던 마을을 `역말'이라고 불렀다고 하니 이곳이 과거 감원역이었다는 흔적은 마을 이름에서나마 희미하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 옛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을 거리가 이리도 낙후된 이유는 무엇일까. 역말에는 사실 `흔행이 고개'도 이 마을에 속해 있다. 조선의 24대 왕인 헌종 때, 음성현감은 이 고개에서 죄수들을 참수했다고 한다. 또한 전염병에 걸려 죽은 시체를 더금뫼(풍장제의 일종) 하던 곳이기도 했다. 그러니 자연 사람들은 이곳을 멀리 했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지금은 `흔행이 고개'도 이름이 `솔고개'로 바뀌었다. 음성군에서는 아무래도 `흔행이 고개'가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좋지 않으니 바꾸었을 것이다. 이 고개는 한일중학교와 음성고등학교, 남신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까하여 의견을 냈을 것이다. 이 고개는 지금은 명품 가로수 길로 아름답게 조성이 되어 옛날의 흉흉함은 그 어디에도 없다.

역말도 머지않아 명품 마을로 자리 잡으리라 본다. 가을이면 노란 은행잎들이 집 앞을 밝혀주었던 은행나무집은 우리 집과 지척에 있다. 그 집은 우리 마을에서 제법 부유한 유지의 집이었다. 지금은 주인인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돌아가신 후라 빈집이다. 한옥의 고풍스러움을 간직한 그 집은 한옥 게스트 하우스로 탈바꿈 중이다. 유독 역말은 빈집이 많다. 그것은 독거노인 층이 많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것을 반증이라도 하듯 우리 집을 중심으로 앞집과 뒷집은 할머니들이 홀로 살다 돌아가신 후로 빈집이 되었다. 사실 우리 골목에서는 우리부부가 제일 젊은 축에 든다.

여기저기에서 굉음으로 요란하더니 드디어 빈집이 헐린 자리에는 깔끔한 공원이 조성되고, 번듯한 주차장이 만들어 졌다. 또한 작년에 헐린 우리 옆집 터에는 역말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역말 갤러리'가 들어 설 예정이라고 한다. 머잖아 그 옛날 감원역의 영화가 다시 찾아 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몽글몽글 차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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