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통
성장통
  • 한기연 시인
  • 승인 2023.03.20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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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한기연 시인
한기연 시인

 

바람이 이끄는 대로 나가보니 봄이 완연하다. 작년 가을부터 각양각색의 축제가 열리고, 그 많은 사람은 다 어디에서 왔는지 축제마다 인산인해였다. 차려진 잔치에 사람들이 많이 오고 마음껏 즐기는 것만큼 좋은 것이 어디 있으랴. 올해는 5월에 열리는 품바축제를 앞두고 지난해 내 삶의 중심을 짓누르던 일이 스쳐 간다. 
작년 구월 음성에도 축제의 깃발이 하늘 높이 나부꼈고, 충북 문인들의 축제를 주관하게 되었다. 나로서는 품바축제를 덤으로 치른 셈이다. 사월부터 손님을 치르기 위한 준비를 했다. 소규모의 협회라 직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회장과 사무국장이 하나부터 열까지 해야 했다. 봄부터 가을까지 내 머릿속은 행사와 관련된 내용으로 엉켜 있었다.
몇 개월 동안 느긋하게 시작한 것이 정작 일을 결정하고 시행하는 것은 촉박하게 이뤄졌다. 선택적 장애가 있는 성격 탓에 난감한 일이 하루에도 몇 번씩 생겼다. 물론 준비과정에서도 수많은 선택을 했지만,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결정할 수 있어서 괜찮았다. 빠른 판단을 요구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난관에 부딪혔다. 현수막, 광고지, 책 표지 디자인까지 속성으로 결정하고 한숨 돌릴 틈 없이 행사를 치렀다. 지금까지 살면서 해 왔던 것보다 더 많은 결정과 판단을 해야만 했다. 
지난주 수업에서 리더십에 관한 부분을 발표하게 되었다. 리더십 이론을 정리하면서 ‘리더’의 역할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리더십이란 일정한 상황에서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고 구성원들을 이끌어 가는 힘이다. 유능한 리더는 자신의 영향력을 활용해 구성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좋은 성과를 만들어 낸다. 나는 과연 어떤 리더인가? 개인적으로는 리더십 이론 중에서 변혁적 리더십에서 추구하는 구성원의 변화를 도모하는 리더이고 싶다. 자료를 검색하다 보니 유능한 리더가 되기 위한 몇 가지 원칙이 보였다. 모두 필요한 부분이었지만, 내게 가장 필요한 부분은 ‘성숙한 판단력을 가지고 의사결정을 한다’였다. 
단체장으로서 판단의 옳고 그름에 대한 책임감에 무게가 실린다. 끝나고 나니 잘못된 판단에 따른 미흡함은 더 명확하게 보였다. 지나친 배려로 거절하지 못하는 습성이 단체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을까 우려됐다. 잘한 것보다는 잘못한 부분에 대한 자책과 반성으로 우울했다. 이미 지나간 일인데 자꾸 되돌아보는 어리석음을 반복하며 여러 날을 지냈다.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사람에 관한 생각을 이렇게 많이 해 본 적이 있었나 싶다. 나를 둘러싼 사람이 힘이 됐다. 사람‘人’의 한자처럼 서로 기대어 살고 있음을 절감한 시간이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도 여럿이 모여서 힘을 보태니 도깨비방망이를 두드린 것처럼 일이 성사됐다. 친하다고 여겼던 사람의 태도와 생각지도 못했던 이의 적극적인 지원을 보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까지 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먼저였다. 문학 스승이신 B 선생님은 걱정을 쏟아낼 때마다 응원해주시고 지나친 간섭을 우려하며 조심스레 도움을 주셨다. 평소 내 중심에 서 있는 언니의 탁월한 혜안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오랜 문학 소모임 회원들의 빠짐없는 참석에 고마울 따름이다. 끝나고 나니 스승께서 문자를 보내셨다. ‘큰 공부 했을 거라며 그렇게 성장하는 거’라는 격려와 위로였다. 말씀 그대로 단체를 이끌면서 성장통을 겪은 듯 아팠다. 봉사하는 자리에 서 있으면서 대우받으려고 했던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내기도 했다. 마음을 누르고 말과 행동을 아끼리라. 그저 고마운 이들을 잊지 않는 리더로 성장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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