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페셔널한 그녀에게서 배운 것
프로페셔널한 그녀에게서 배운 것
  • 최은서 청주시 서원구 주민복지과 주무관
  • 승인 2023.03.14 18: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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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최은서 청주시 서원구 주민복지과 주무관
최은서 청주시 서원구 주민복지과 주무관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대부분 받지 않고 무시해 버리지만 오늘은 어쩐지 그 전화를 받고 싶은 생각이 들어 전화를 받고 말았다.

○○○ 고객님이시죠??? 여기 △△△인데요... 하아... 지난번에 신청하셨던 건 진행 안 하실건가요? 그거 하실거예요 말거예요? 그럼 취소라도 좀 하던가, 몇 번을 안내를 해드렸...암튼...이 신청 건은 삭제하겠습니다.

상대방은 지금 매우 짜증이 나지만 본인은 프로페셔널한 직장인이므로 내키지 않는 친절함을 가장해 나를 있는 힘껏 질책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무런 준비 없이 받은 전화에서 상대방이 내게 그토록 화를 내자 나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이윽고 나는 콩닥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대체 내가 그녀에게 무엇을 잘못했는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일은 신청한 지 두 달이 다 되도록 일이 진행되지 않아 신청자인 나조차도 포기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그런데 그 회사에는 두 달이 다 되도록 그 일을 진행시키지 못했지만 결코 포기는 하지 않았던 프로페셔널한 담당자인 그녀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의 지속적인 안내를 내가 줄곧 무시하여 그녀를 업무적으로 곤란하게 만든 것은 아닌가 정신이 번쩍 든 나는 핸드폰의 문자메시지 내역과 통화기록을 뒤지기 시작했고 그녀가 내게 보내준 안내 메시지는 단 한 건이었음을 발견했다.

신청 건을 진행 시키는 방법에 대한 안내만 있고 취소나 삭제에 관한 안내는 단 한 글자도 포함되지 않은 문자메시지였다.

잠시 후 나는 그녀에게서 넘겨받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르는듯한 기분이 되어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빚지고는 절대 못 사는 정직한 사람임을 늦게나마 알려주려 사무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나 사무실 밖에 나가보니 어느덧 추운 겨울은 다 지나 몽글몽글한 봄 내음이 코끝을 간지럽히고 너무나 따사로운 봄 햇살이 눈이 부시도록 내리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무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나는 본의 아니게 분노의 전화를 걸 타이밍을 놓쳐버리게 되었다.

결국 그렇게 잠시 바깥공기를 쐬고 나자 내 온몸을 가득 채웠던 분노는 조용히 사그라들었고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에 돌아와 업무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어김없이 울려대는 민원인들의 문의 전화를 받으며 문득, 내 전화를 받는 상대방인 민원인들에게도 내 감정이 그대로 전해지리라는 생각에 목소리가 조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혹 나도 관공서 업무를 자주 접하지 못하는 민원인들과 나의 업무 이해도가 다르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민원인들을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반성해 본다.

나와 통화를 하는 상대방에게 표정은 감출 수 있어도 목소리와 말투, 그리고 작은 뉘앙스의 차이만으로도 나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된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겠다.

전화 한 통으로 예고 없던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탄 끝에 비로소 큰 깨달음을 얻은 하루였다. 프로페셔널한 그녀에게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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