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꼰대일까
난 꼰대일까
  • 임현택 전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 승인 2023.03.14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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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전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임현택 전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보글보글 항아리가 숨을 쉰다. 넋을 잃고 장아찌 담근 항아리 속을 한참 바라보니 하얀 거품이 몽글몽글 톡톡 터지는 것이 공기방울이 살아 숨을 쉰다. 마치 갯벌에 부럿(낙지 숨구멍)처럼 공기방울이 이는 항아리 속을 기다란 나무주걱으로 휘휘 젖자 특유의 장아찌 향이 오감을 자극한다. 건지를 들어 올리자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던 그 푸르던 빛깔은 온데간데없다. 한소끔 시간이 지나간 자리엔 한여름 땡볕에 맥없이 축 쳐진 이파리처럼 힘없이 늘어진 이파리를 나무주걱으로 이리저리 들춰 뒤적여주고 검붉게 변한 건지를 꾹꾹 눌러 다독였다.

절이고 삭혀 오래 두고 먹는 장아찌, 예전의 어머님들은 고추장, 된장 속에 재료를 박아 만들었는데 요즘은 요리도 퓨전시대다.

다양한 레시피(recipe)중 난 설탕으로 재료를 절여 장아찌를 만든다. 장아찌재료와 설탕을 반반씩 혼합하여 항아리 속에 켜켜이 꾹꾹 눌러 담고, 보름 후에 건지를 건져낸다. 설탕에 절여진 달달한 건지를 진간장으로 솔솔 버무려 간을 맞춰 서늘한 곳에 보관하면 그만이다. 특별한 비법도 없이 간단하게 담근 장아찌, 밥상의 밑반찬으로 매료되어 철철이 담그고 있다.

그 많은 장아찌 중 가장 선호하는 것은 무장아찌다. 먹을 때 조금씩 꺼내 통깨를 솔솔 뿌려 참기름에 무치기만 하면 환상적인 그 맛의 매력은 뿌리칠 수 없는 맛이다.

반찬가게나 온라인쇼핑몰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데 철철이 장아찌를 담그는 모양이 아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꼰대처럼 보이나 보다. 고루하단다.

새로운 모든 것이 손끝의 터치 한 번으로 이루어지는 세상인데 직접 채취를 하고 담그는 일이 못마땅한가 보다. 그럼에도 난 계절마다 나물이며 열매며 여러 가지 종류의 장아찌를 넘치게 담아 지인들께 나눠주는 행복 때문에 더 담그는지도 모르겠다. 유독 요란스럽게 보글거리는 무장아찌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카푸치노 커피처럼 하얗게 보글거리는 무장아찌, 시큼한 동치미향이 확 올라오는 것이 최상의 발효상태였다. 각설탕처럼 하얗게 눈부시던 깍두기모양의 무, 진이 다 빠져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 주름진 아버지 손등처럼 쪼글쪼글 절여 있었다. 오돌오돌 씹히는 식감과 달짝지근한 맛이 입맛을 돋우어 하나를 더 꺼내 오물거리니 풍미가 입안 가득 번진다.

꽃샘바람이 이는 이맘때면 뜨끈뜨끈하고 시원한 낙지칼국수가 제 맛이다. 후루룩 빨려 들어가는 칼국수 한입에 꼬들꼬들 아삭아삭 식감이 나는 무장아찌 한 조각, 감칠맛 도는 한입은 모자람 없는 환상적인 궁합이다. 갯벌 속에 산삼이라 일컫는 낙지 한 마리는 인삼 한 근과 맞먹는다는데, 인삼보다 더 좋다는 겨울무로 만든 무장아찌와 낙지칼국수는 가히 영양 궁합으로 손색이 없다.

이처럼 우리 집 밥상에 그림자처럼 동행하는 묵은 장아찌는 곁들여 먹는 찬(饌)으로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찬이다. `오래 말린 땔나무, 오래 묵어 농익은 포도주 그리고 옛 친구와 읽을 만한 원로작가의 글'은 오래 묵을수록 좋다고 프랜시스 베이컨은 말했다.

오래 묵어도 변치 않은 장아찌처럼 우리 삶도 진득하니 오래 묵어야 제 맛 난다. 난, 오래 묵어야 좋은 것이란 키워드에 `고향 같은 묵은 장아찌' 한 줄을 끼워 넣고 싶다. 삶이라는 무게가 이따금 양어깨를 짓누를 때면 정이 그립고 고향이 그리워진다.

허연 머리카락이 많아지면서 커지는 고향의 향수, 조금 촌스럽지만 이렇게 고향 타령을 하는 난 꼰대가 맞긴 맞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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