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에게
매화에게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3.03.1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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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사람이 자기가 기거하던 곳을 떠나 타지에서 오랜 기간을 지내다 보면, 누구나 느끼게 되는 것이 향수(鄕愁)일 것이다.

특히 봄철이 되면 예전 살던 곳에서 자주 보았던 꽃들이 떠오르곤 할 것이다.

타지에서 매화를 만나면, 곧장 예전 매화가 떠오르는데, 이때 매화는 마치 그곳에 여전히 기거하며 자신을 맞아 줄 가족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조선(朝鮮)의 시인 이황(李滉)은 자신이 오래 기거하던 곳인 도산(陶山)에 피던 매화를 타지에서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매화에게(陶山訪梅)

爲問山中兩玉仙(위문산중양옥선) 산속 두 송이 매화에게 묻노니
留春何到百花天(유춘하도백화천) 봄 내내 머물러 어떻게 온갖 꽃 피는 날에 이르렀소?
相逢不似襄陽館(상봉불사양양관) 오늘 와 만나 보니 예천 객사의 매화와는 사뭇 다르구려
一笑凌寒向我前(일소릉한향아전) 한 번 웃어 추위 이기고 내 앞에 왔으니

시인은 자신의 오랜 거처였던 도산(陶山)을 떠나 관직을 맡은 임지인 한양으로 향하면서 새봄을 맞이하였다.

임지로 이동하면서 하룻밤을 묵었던 양양관(지금의 예천 관아)에서 매화 핀 것을 보게 되었다.

예천까지 갔다가 병이 나 사직 상소를 올리고, 풍산의 광흥사와 봉정사에 머물다가 늦은 봄에야 도산으로 돌아왔다. 정월에 떠나 늦봄에 돌아왔으니 두어달은 족히 된 셈이다.

병을 얻어 관직까지 버린 시인을 맞아 준 것은 두 송이 매화꽃이었다. 같은 매화겠지만, 예천 관아에 묵을 때 보았던 매화꽃과는 사뭇 다른 감회를 준 것은 무엇 때문일까?

시인이 떠난 도산을 묵묵히 지키고 있다가 실의에 빠져 돌아온 시인을 반갑게 웃으며 맞아 준 까닭이리라. 시인이 임지로 향하면서 병을 얻는 등 풍상을 겪은 것처럼 도산의 매화도 순조롭게 꽃을 피우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직 남은 겨울의 매운 추위를 몸으로 견뎌 내며 꽃을 꿋꿋이 피우고 있다가, 온갖 꽃들이 피고 지는 늦봄에 이르도록 지지 않고 기다렸다가 시인을 맞아 주었으니 시인의 감회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가까이 있을 때는 잘 느낄 수 없었던 존재감이 뚜렷이 부각될 때가 있다. 고향 집에 머물던 때는 있는 듯 없는 듯했던 집 마당의 매화꽃이 집을 떠나 먼 타지에서 매화를 보게 되면 문득 생각이 나고 그리워진다.

언제나 고향집에서 제자리를 지키며 나를 기다려 주는 매화꽃 두 송이만 있다면 이 세상이 결코 외롭고 삭막하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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