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 저녁에
삼일절 저녁에
  • 김진숙 수필가
  • 승인 2023.03.08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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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김진숙 수필가
김진숙 수필가

 

딸의 일본인 친구가 우리 집에서 2박 3일을 머문 적이 있다. 물 한잔도 인사 없이 먹지 않는 고운 아가씨였다. 돌아가는 날엔 “실수투성이인 한국어라 죄송합니다”라는 인사를 서두로 “저는 이 귀중한 3일을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또 만나는 날을 기대하겠습니다”라는 예쁜 편지도 남겼다.

우리가 일본을 여행하고 온 것을 알고는 “당신들이 일본에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안내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제가 꼭 안내하고 싶습니다”라는 편지를 집으로 보내왔다. 그 아리따운 아가씨에게 반해서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일본이 참 가깝게 느껴졌었다.

일본을 여행하면서도 `이 나라는 괜찮은 나라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까지 완벽하게 맞춘 듯 정돈된 거리, 누구에게서나 느껴지던 친절, 길을 걷는 내내 들리던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이 사람들은 고마운 것도 많다고 중얼대면서도 나도 몰래 그들을 따라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를 뇌이며 다녔었다.

일본 사람들은 아기가 울면 폐가 될까봐 어린 아기를 데리고 지하철을 타는 것도 삼간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폐가 되는 것을 지극히 조심하는 예의바르고 배려있는 사람들이 정갈하게 살고 있는 이웃나라 일본.

그런데 그 일본이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 무방비 상태의 우리나라를 무력으로 쳐들어와 약탈을 일삼다가 드디어는 나라의 주권조차 빼앗아간 나라가 아닌가? 자신들의 전쟁에 우리 청년들을 소모품으로 내몰고 수많은 양민을 강제노역시킨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용서가 안 되는 철천지 원수가 아닌가?

그러면 그 때의 일본은 왜 그렇게 악랄했고 지금의 일본은 어떻게 친절할 수 있는 것일까? 상황이 변한 것이다. 그 때의 우리는 그들의 어떤 만행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약자였던 것이다. 그들은 주인이었고 우리는 종이었던 것이다. 배려와 예의는 대등한 관계일 때만 성립한다. 토끼가 호랑이에게 어떤 배려를 바랄 수 있겠는가?

세계를 이끌어가는 선진 대열에 나란히 이름을 올린 지금, 그들은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이웃 나라로 존중하며 예의 있게 대한다. 같은 호랑이가 됐으니 호랑이간의 예의를 지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샴페인을 너무 성급하게 터트렸다는 말을 종종 들은 것 같다. 35년간의 일제강점기를 거쳐 6·25전쟁까지 치른 불운했던 나라가 이만큼 성장했으면 가히 샴페인을 터트릴만하다. 자축하며 서로의 노고를 치하할 만하다.

그렇지만 샴페인을 너무 성급히 터트렸다는 말속에는 자만심에 빠져 노력하기를 멈추었다는 우려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3·1운동 때 윤형숙 열사는 왼손으로 태극기를 흔들다가 일본경찰의 칼에 왼 팔이 잘리자 오른손으로 태극기를 옮겨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이 나라가 그렇게 지켜진 나라이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목숨이 주춧돌로 놓인 나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는 약한 나라가 되면 안 되는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와 겨루어도 지지 않는 당당한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리고 자만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한 번쯤 되짚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 삼일절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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