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녀성
구녀성
  • 심억수 시인
  • 승인 2023.02.26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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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심억수 시인
심억수 시인

 

코로나로 멈추었던 일상이 다시 회복되었다.

코로나 핑계로 만나지 못했던 지인과 구녀성을 향했다. 이티봉에 휴게소가 조성되어 등산로 입구를 찾지 못해 헤맸다. 행인의 안내에 건물 오른쪽으로 향하니 등산로 입구 푯말이 서 있다.

휴게소 건물을 가로질러 100여 m를 올라가니 구녀성 가는 길 이정표와 안내문이 있다.

구녀성은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하며 둘레는 960미터 동서남북의 문 터와 남서북쪽에 치성 흔적이 남아있다고 적혀 있다.

구녀산은 청주시 미원면 대신리 종암리와 내수읍 우산리의 경계에 걸쳐 있다.

원래 구라산(句羅山)이라고 불렀으나 이곳 축성 설화와 관련하여 구녀성으로 불리고 있다.

청주시지에 수록된 설화를 살펴보면 산성마을에 딸 아홉과 아들 하나를 둔 홀어머니가 살았는데 모두가 힘이 장사였다.

어느 날 스님이 그 집을 찾아와 아들이 액운이 들어 얼마 못 살 것이라고 점을 쳤다. 홀어머니는 노승을 붙들고 액운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고 묻었다. 노승은 난감해하면서 아들을 살리려면 딸 아홉을 모두 죽여야 한다고 했다.

홀어머니는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아들을 살리기 위한 내기를 하게 되었다. 아들에게는 나막신으로 송아지를 끌고 서울을 다녀오게 하고 딸들에게는 성을 쌓게 하였다.

아들이 쉽게 이기리라고 생각했는데 내기를 시작한 지 5일이 되던 날 오히려 아홉 명의 딸들이 성을 거의 완성하게 되었다. 홀어머니는 노심초사하여 머리를 짜냈다. 뜨거운 팥죽을 끓여놓고 딸들을 불러 이제 성을 다 쌓았으니 음식을 먹고 나머지를 완성하라고 권유했다.

딸들이 뜨거운 팥죽을 빨리 먹지 못하고 후후 불면서 먹는 동안 아들이 집에 도착했다. 내기에 진 아홉 딸은 성 위로 올라가 몸을 던져 죽었다.

부질없는 불화로 아홉 누이를 잃은 동생은 그 길로 집을 나가 돌아올 줄 몰랐다. 어머니도 남편의 무덤 앞에 아홉 딸의 무덤을 만들어 놓고 여생을 보내다 숨을 거두었다. 성안에 두 줄로 배열된 11기의 묘가 있다.

우리나라 가부장적 전통가족제도의 특성인 남아선호사상이 담긴 남존여비의 비극적 설화라 생각된다.

구녀성을 향해 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그동안 수많은 산을 오르면서 아름답게 피어난 꽃과 만산을 붉게 수놓은 단풍을 만났다. 뜻하지 않게 소나기가 내리거나 눈보라를 만날 때도 있었다. 갈림길을 만나 호기심에 다른 길로 접어들어 낭패를 본 적도 있었다.

돌이켜 보면 산은 계절마다 나에게 많은 선물을 주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핑계로 바쁘게 뛰다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다.

구녀성 정상까지 약 30 여분 소요된단다. 눈으로 보이기는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듯한데 보조자일이 설치되어 있다. 자일을 잡고 오르는 산행에 숨이 가파르다. 둔덕에서 잠시 멈추고 심호흡을 해본다.

나의 인생살이도 오르락내리락 산행과 같았다.

어쩌다 정상을 눈앞에 두고 오르지 못할 때는 이제껏 살아온 내 인생의 목표를 잃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무리하게 정상을 찾는 욕심보다 걸어온 만큼 행복을 느끼는 여유로운 삶을 누리고 싶다.

구녀성의 슬픈 사연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 구름을 비집고 내려온 햇살이 앞장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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