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기류
마음의 기류
  • 한기연 시인
  • 승인 2023.02.20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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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한기연 시인
한기연 시인

클래식 공연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다. 이틀 전 아는 언니가 티켓이 있다며 공연 볼 시간이 있냐는 전화에 거절하지 못했다. 음악을 즐겨 듣지는 않지만, 트로트를 좋아하고 클래식은 별로였다. 한 장의 표를 두고 `누구를 줄까?' 고민하다가 나를 떠올렸을 그 마음이 고마워서 혼자 공연장을 찾았다.

언니의 가족 옆에 배정된 자리에 숨죽이고 앉아 기다렸다. 팜플릿을 보면서 연주내용을 봐도 잘 모르겠다. 시작 전에 공연 볼 때 지켜야 할 예의에 대해 안내를 했다. 악장과 악장 사이에는 손뼉을 치지 말라는 말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눈치를 보면서 박수를 보내느라 연주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무대 중심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연주자의 카리스마가 공연장을 압도한 것이다.

세계 최고의 음대 줄리아드 스쿨 교수인 거장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연주가 음성의 공연장으로 사람들을 이끌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첼리스트 정명화와 지휘자 정명훈이 삼 남매로 음악계에서는 유명하다는 정도이다. 이번 연주는 쇼팽 전문가로 알려진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Kevin Kenner)가 함께 무대에 오른다. 일흔 중반을 넘긴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는 청중의 마음에 화살처럼 꽂혔다. 피아노와 합이 맞지 않을 때는 다시 자세를 잡으며 시작하는 태도도 놀라웠다. 악장과 악장 사이에 잠깐 무대를 벗어나서 궁금했는데 나중에 들으니 신발이 미끄러워서 갈아 신고 왔단다. 완벽주의자로 불릴 만큼 까다롭다는 그녀의 연주 자세가 엿보였다. 그 시간에도 관중들은 차분하게 기다렸다.

바이올린의 선율이 섬세하고 아름다웠다는 표현밖에 못 할 정도로 클래식을 듣는 귀가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 연주자와 청중의 태도는 명징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열정과 혼을 담은 최고의 연주를 보여준 연주자와 그에 대한 화답으로 아낌없는 박수와 기립으로 경의를 표한 청중이 있었다.

공연이 끝난 후 검색해 보니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1967년 레벤트리트 콩쿠르 우승으로 주목을 받으며 음악계에 등장해 현재까지도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 및 연주자들과 음악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1995년 `아시아위크'가 뽑은 `위대한 아시아인 20인' 가운데 클래식 연주자로 유일하게 선정됐으며, 영국 `선데이타임스'가 선정한 `최근 20년간 가장 위대한 기악 연주자'에 오르기도 했다. 2017년에는 크라이슬러, 그뤼미오, 밀스타인 등과 함께 그라모폰 명예의 전당 바이올린 분야에 이름을 올렸다.

피아니스트 케빈 커너와 오랜 시간 음악적 동반자로 활동해오고 있는 두 연주자는 이번 공연에서 그리그 바이올린 소나타 제3번 다단조와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 사장조,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가장조를 연주했다.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것은 준비된 공연이 모두 끝난 후의 커튼콜이다. 커튼콜의 사전적 의미는 연극이나 음악회 따위의 공연에서, 관객들이 찬사의 표시로 환성과 박수를 보내어 공연이 끝나 무대에서 퇴장한 출연자를 무대의 막 앞으로 다시 나오게 하는 일이다.

청중의 박수는 연주자를 무대로 불러들였다. 예정된 곡보다 좀 더 편하게 들렸다. 한 곡을 끝내고 퇴장한 뒤 청중의 반응에 두 번째로 무대에 서서 정경화의 짧은 설명과 함께 연주가 끝났다. 기립박수로 마음을 보내는 청중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일어섰다. 다시 무대로 나온 정경화와 케빈 커너는 연주로 마음을 표했다. 세 번의 커튼콜 무대를 보여 준 그녀가 조금 더 가깝게 느껴진다. 무대에 오르는 사람은 무대에서 죽는 것이 소원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죽을 것같이 아프다가도 무대에만 오르면 관객의 박수와 호응에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 보이지 않는 기류로 뜨거웠던 밤의 연주가 아직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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