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식물
기생식물
  • 김은혜 수필가
  • 승인 2023.02.15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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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은혜 수필가
김은혜 수필가

 

아랫배 옆구리가 잊을만하면 아프다. 정상인 얼굴로 일상을 맞이하기가 힘이 든다.

밤이면 아이가 요람을 마구 흔들듯 흔들어 단잠을 깨우는 횟수가 늘어난다. 나의 몸은 나무로 비유하면 고목이다. 하여 내일이면 덜하겠지 달래기를 수개월, 그런데 칭얼대는 강도가 점점 더 심해 의원을 찾아갔다. 여러 과학 기술로 들여다보고 두드려본 결과 대장에 종양이 자라고 있단다. 인간은 움직이는 생명체다. 이 생명체는 음식을 먹어주어야 모든 기능이 제 할 일을 한다. 이런 생명체에 비정상적인 생명체가 부착되어 영양분을 야금야금 빨아먹으며 자라는 게 종양이다.

수일을 두고 고심 끝에 죽음이 두렵잖다는 결론이 난다. 복중에서 자라던 태아가 다 자라면 고통을 감수하며 나와야 이 세상의 삶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죽음이란 관문만 통과하면 또 다른 세계가 있다.

언젠가 산행하다 본 겨울나무 앙상한 가지에 까치집같이 달린 겨우살이가 생각난다. 이 겨우살이는 나무의 영양분으로 살아가는 기생식물이다. “그렇다. 이 종양도 곧 기생식물이다. 겨우살이와 더불어 사는 나무는 수명이 단축된단다. 인간도 다를 바 없다. 나이가 들면 친구 하자고 밀고 들어와 함께 동거하자는 치매와 편마비에 묶여 사느니. 기생식물과 더불어 짧게 사는 게 낫지 않나 싶다.

자녀들을 한자리에 불러 놓고 내 나이 팔순이 내일모레다. 통증을 줄이는 치료는 받되 수술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큰아들이 무겁게 입을 연다. 내가 어머니 입장이라도 그럴 거예요 한다. 거류민의 삶이 끝이 나나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지낸다. 순응하던 자녀들이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검사나 받아보잔다. 나도 남은 날이 궁금해 허락했다.

검사가 끝이 나자 나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하루가 여삼추라며 수술 날짜가 잡혔다. 이건 아니잖니, 만류해도 시냇물이 흐르듯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대장 35cm와 간 일부를 떼어냈단다. 난생처음 열나흘 동안 병원 침대에 누워 수액만 맞았다. 신고식치고는 너무 심했다. 끝이겠지 했는데 다음 과정이 기다린다.

4기라 치료를 받아야 한단다. 단호히 거절했다. 거부하면 여섯 달밖에 살 수 없단다. 이 소식에 놀란 자녀들은 기생식물의 자람을 늦추자며 약이라도 먹잔다. 눈물로 간청함이 어찌나 간절한지 또 뿌리치지 못한다.

장이 잘려서인지 자세가 바뀔 때마다 배가 아프다. 음식을 먹으면 곧바로 소화되지 않은 변을 본다. 익히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 설사한다. 몸이 가렵고 피부색이 검어진다. 볕을 보면 눈이 아프고 눈물이 난다. 실내에서도 검은 안경을 써야 했다. 손톱 발톱이 검어지고 손바닥과 발바닥이 아프더니 점점 마른 낙엽처럼 되어간다. 급기야 칼로 마구 쪼아놓은 것처럼 갈라진다. 발톱에서 진물이 난다. 산책도, 두 식구 밥 지어 먹는 일도 힘에 부친다. 영락없는 환자다. 주사보다 약이 약하다며 권하기에 복용했건만, 약을 계속 먹으면 기생식물은 자라지 않겠지만 다른 기능이 죽는다. 이 사실이 너무나 싫다.

조용히 위에 계신 분께 “환자로 길게 사느니 건강한 몸으로 짧게 살다 간다고 했잖소.” 아뢰고는 의사의 허락 없이 약을 끊었다. 달포쯤 지났을까. 피부색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발바닥이 덜 아파 산책을 할 수 있다. 변도 소화된 변이고 체중도 조금 는다. 약을 먹는 줄 아는 의사는 석 달이 지나니 CT를 찍잔다. 정상이란다. 석 달 후 또 CT를 찍었다. 여전히 정상이다. 정상인으로 살고 있는지 3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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