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말들
보이지 않는 말들
  • 민은숙 청주 생명초중학교 사서교사
  • 승인 2023.02.13 19: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민은숙 청주 생명초중학교 사서교사
민은숙 청주 생명초중학교 사서교사

 

작년에 `어느 수집가의 초대' 전시를 보려고 했다. 이건희 회장 사망 후 수집품을 기증해 열린 전시회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유명한 작품도 많았고 삼성 일가가 관심을 가지고 수집한 작품들은 대체 어떤 작품이었을까 하는 궁금증도 많았을 것이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닌지라 전시회 전회차 마감, 몇 번의 예약 실패 후 현장 판매되는 표를 기대하며 전시회장을 찾았다가 휘감고 늘어진 어마어마한 줄에 상설전시만 보고 발걸음을 돌린 기억이 있다. 그래도 다행히 기증품은 전국 순회전시예정이더라. 청주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2023년에 3번 순회 예정이다. 그렇게 작년 9월부터 1월 말일까지 김환기의`여인들과 항아리' 작품이 왔다. 전시 기간이 좀 길었고, 연말 한창 바쁜 시기를 보내며 새까맣게 잊고 있다 마지막 날 그림을 보러 갔다. 수장고 벽 하나를 꽉 채울 그림이라 소파에 앉아 편하게 작품을 봤다. 그런데 이 작품보다 5층의 `전시배달부' 특별전에서 본 천경우 작가 작품이 마음에 들어왔다. 전시에 연관된 책을 선정해 전시해두었는데, 이 작가가 직접 쓴 자기 작품에 대한 작품노트 책이 있더라. 그게 오늘 소개할 `보이지 않는 말들(현대문학)'로 이 책은 작가 본인의 작품에 대해 문학지에 연재한 글을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작가 천경우는 1969년에 태어나 독일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유럽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 한국에 돌아와 한 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인터뷰 기사도 몇 있고, 설치미술 작품이라 눈으로 보는 것 외에도 이야기를 보는 재미가 있다.

전시회에서 내가 궁금했던 작품은 `다바왈라의 점심'이라는 작품이었는데, 여러 찬합이 죽 있고 붉은 글씨로 무엇인가가 쓰여진 작품이었다. 한국인에게는 약간 거리껴지는 붉은 글씨가 시선을 확 끌었다. 이게 뭔가 싶어 작품 설명을 읽어보니 인도는 워낙 식성이 다양해 식당을 이용하기 보다 집에서 요리한 도시락을 점심시간에 배달 받아먹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그 도시락을 배달하는 것이 다바왈라라고 불리는 배달부이다. 인도 문맹률이 높고, 신뢰가 그리 높지 않은 사회인데도 이 도시락 배달만은 사고율이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드물다 보니 기네스북에도 등재될 정도란다. 작가는 50인의 다바왈라들에게 배달 받고 싶은 음식 신청을 적게 했다. 추억의 음식부터, 이름만 들어본 비싼 음식 등 다양한 메뉴가 나왔다. 작가는 인도 음식에 대해 현지인에게 배우고 실제 먹어보기도 하며 요리사를 선정해 각자가 원하는 도시락을 다바왈라들에게 전달했다. 처음엔 어리둥절하다 음식을 먹어보며 서로가 신청한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나눠 먹어 보기도 한다. 이 책은 그렇게 자신의 작품에 대해 작업 과정을 설명하는 책이다.

예술작품은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다 싶은 작품도 좀 있었다. 마르셀 뒤샹의 `샘',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코메디언'이라던가 뱅크시 `풍선과 소녀' 같은 작품은 작품에 딸린 이야기 때문에 더 가치가 생긴 거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을 재밌게 읽었던 것 같다. 초면의 사람과 악수하고 랩으로 묶고 서로의 이름을 랩에 적은 후 20분간 관찰하는 작품이라던가 오토바이 배달부들을 일하는 모습으로 미술관에 초대한 후 `지금 달려가고 싶은 곳'에 대해 적어보기 등의 이야기를 읽으며 여러 생각을 해보게 된다.

예술을 이렇게 즐기는 것도 한 방법이리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