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칭개 국
지칭개 국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3.02.13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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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비가 자주 내려선 지 밭둑에 파릇파릇 봄나물이 지천입니다. 목도의 친구를 찾아갔다가 들린 경로당에서 점심을 얻어먹게 되었습니다. 팔구십 이쪽저쪽 할머니들이 여덟 분, 팔팔한 이 여사가 정성껏 점심을 준비해서 대접하는 날이라 했습니다. 메뉴는 동네 아줌마 누군가가 들에서 캐 온 지칭개 한 바구니가 있어 된장국을 끓였다는, 둥근 상에 둘러앉은 할머니들 틈에 끼어 구수한 된장국 냄새 그 친근함으로 수저를 들었는데 아, 목구멍으로 술술 잘도 넘어갑니다. 지칭개 국, 시래기, 시금치, 냉이 등 여러 가지 채소로 된장국을 끓여 먹어 보았지만 지칭개로 국을 끓인 것은 난생처음 먹어 보았습니다.

그동안 지칭개는 알지도 못했고 먹어 보지도 않았습니다. 전국으로 옮겨 다니는 직장을 갖은 남편 덕에 그 지역만의 먹거리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다고 자신했는데, 충청도 지방에서만 먹는 지칭개국을 이곳 괴산에 와서 처음 알게 된 것입니다.

몇 해 전 일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먹는 나물 중에 비름나물이 있습니다. 부산에서 몇 년 산 적이 있는데 그곳 슈퍼에서도 비름을 팔고 있었고 주부들은 싸고 맛있다면서 장바구니에 담아가곤 했습니다. 내가 자란 전라도에선 비름나물은 그냥 잡초일 뿐 밥상에 올라오지 못했습니다.

언젠가 친정에 갔을 때, 비름나물을 알리고 싶어 텃밭에 나가 손수 뜯어다가 나물로 무쳐 상에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내 딴엔 양념에 참기름까지 듬뿍 쳐서 맛있게 만들었지만, 식구들은 겨우 대접 삼아 한 젓가락 집을 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곡창지대이며 평야 지대라서 비름나물 아니어도 넘쳐나는 것이 각가지 나물이어선지, 전라도 음식에 대한 긍지 때문인지, 하여튼 전라도 사람들은 비름나물을 밥상에 올리지 않습니다.

할머니들과 함께 먹어 본 지칭개국은 별미였습니다. 보드랍고 구수한 것이 냉잇국보다 훨씬 맛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맛있는 국을 나는 왜 여태껏 몰랐으며 타지 사람들에게 전해지지 않았는지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강원도에 곤드레만드레 있다면 괴산에 지칭 개가 있다고, 노래 부르듯 지칭개국을 선전하고 다녔습니다.

괴산에서만 먹을 수 있는, 봄철 한때만 먹을 수 있는 괴산의 특산물. 식당 메뉴로 개발해도 충분하겠다고 몇몇 식당 주인에게 권하기도 했고 실제로 한 식당에서는 메뉴표에 등장한 것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괴산 아니면 못 먹는, 이 계절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그 희귀성으로 승부를 봐도 되겠다고 식당 아줌마를 꼬드긴 것인데, 산막이 옛길에 놀러 온 관광객들에게도 다슬깃국만 권하지 말고 지칭개국도 맛보고 가라고 하자고 침이 마를 정도로 지칭개국에 열성이었습니다.

들판에 나갔다가 지칭개가 눈에 띄어 한 움큼 뜯어와 된장국을 끓인 적이 있습니다. 전에 먹었던 기억으로 남편에게 한껏 개봉박두 기대하시라 설래발까지 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간을 보다가 깜짝 놀라 자빠질 것 같았습니다. 소태보다 쓰다?는 속담이 생각날 정도로 쓰디쓴 맛! 이런 국이 아니었는데….

친구가 가르쳐 준 걸 깡그리 잊은 채 그냥 된장국 끓이듯 했으니 그럴 수밖에요. 지칭개국은 예비지식 없이 끓여선 절대 안 되는 국이었습니다. 나의 원망에 친구가 다시 알려줍니다. 지칭개는 엉겅퀴과(?)로 쓴맛이 있다는 것, 국을 끓이려면 먼저 뿌리를 제거하고 빡빡 치대어 푸른색 쓴 물을 빼내야 한다는 것, 그런 후 콩가루에 버무려 된장을 푼 물에 넣어 끓이는데 이때 또 하나의 팁은 완전히 포옥 끓을 때까지 절대로 뚜껑을 열지 말 것. 그래서 명심하고 다시 한번 끓여보았습니다. 하지만, 전에 이 여사가 끓인 그 구수하고 보드랍고 맛있는 국은 어찌 되었는지, 진하진 않지만, 쓴맛이 감돌아 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내 솜씨로는 안 되는가? 두 번의 실패로 더는 지칭개국을 끓이지 않았고 지칭개국이 맛있다고 떠벌리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한데 후에야 알았습니다. `고갱이도 빼야'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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