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매화
눈과 매화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3.02.13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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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매화가 피는 시기는 늦겨울이자 초봄이다. 아직은 여전히 겨울이지만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이미 봄이다라고 여기는 때가 바로 이 시기이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도 매화는 흰 눈과 공존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매화는 그 빛깔이 희기 때문에 겨우내 눈꽃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눈에는 흰 눈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런저런 연유로 해서 눈과 매화가 함께 있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풍부하면서도 신선한 감흥을 일으키게 하기에 충분하다. 송(宋)의 시인 노매파(盧梅坡)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눈과 매화(雪梅)



有梅無雪不精神(유매무설부정신) 매화는 있는데 눈이 없으면 생기가 부족하고



有雪無詩俗了人 (유설무시속료인) 눈은 있는데 시가 없으면 사람을 속되게 하네



日暮詩成天又雪(일모시성천우설) 해질 무렵 시를 다 지었는데 하늘에서 또 눈이 내려



與梅倂作十分春(여매병작십분춘) 매화와 더불어 완벽한 봄의 정취를 합작하네





시인의 생각으로는 매화와 눈은 홀로 있으면 불완전체에 불과하다. 둘이 함께 어우러져야 비로소 완성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눈 없는 매화는 생기가 없어 보인다. 마치 단짝을 만나지 못해 시름겨운 사람의 얼굴처럼 말이다. 맥없이 창백한 매화의 얼굴은 단짝인 눈을 만나면 아연 생기가 돈다.

그렇다면 눈과 시의 관계는 어떠한가? 이 둘이 함께해야 사람의 기품이 만들어지는 그런 사이라는 것이 시인의 생각이다. 눈을 보고도 시흥이 일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기품이 없는 것이다. 시인은 눈을 보고도 시흥이 일지 않는 속된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내린 눈을 보고 애써 시 한 수를 완성하고 나니 해가 저물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하늘에 또 눈이 내린다. 시인의 시에 화답하는 하늘의 시가 눈인 것이다. 눈이 있어 시를 썼고, 시가 있어 또 눈이 내린다. 여기에 매화가 하얗게 피어나 화룡점정의 정을 찍는다. 눈과 시와 매화, 삼자가 어우러져야 봄의 정취가 완성된다고 한 시인의 시심도 농익은 봄의 정취가 아닐 수 없다.

눈과 매화가 함께 하는 장면은 해동의 메시지를 던져 주는 뉴스 사진과 같다. 눈은 눈대로 매화는 매화대로 고유의 흥취가 있지만 이 둘이 어우러져 만드는 흥취는 자연이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한 신성의 영역이다.

고대하던 봄이 오는 소식을 눈과 매화가 포즈를 함께 취한 사진 뉴스를 통해 듣게 되고, 이에 시흥이 일어 시 한 수가 완성된다면 이보다 완벽한 봄 맞이 의식은 없을 것이다.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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