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사라진다
추억이 사라진다
  • 김금란 기자
  • 승인 2023.02.08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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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금란 부국장
김금란 부국장

 

시간은 기억을 남긴다. 기억은 추억이 되고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살다 보면 되는 일보다 되지 않는 일이 많고 가끔은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추억은 삶의 목적이 되기도 하고 다시 일어날 힘을 주기도 한다.

추억은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또 다른 미래를 위한 발판이 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먹고 살만해진 요즘 추억이 사라지고 있다.

대학가에서는 졸업 앨범 제작을 안 한다. 학생들이 졸업 사진 촬영을 하지 않는 데다 앨범 구매 신청자도 저조하다고 말한다. 졸업앨범에 학과별로 학생들의 학사모 쓴 사진을 넣고 싶어도 넣을 사람이 없다. 청주대는 2019년, 서원대는 2020년 앨범 제작을 중단했고 충북대는 지난해 4월 더이상 앨범을 만들지 않는다. 대학 관계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학과별로 소속 교수들은 모두 사진이 들어 있는데 정작 졸업생들의 얼굴은 1~2명에 불과해 앨범을 들춰보기도 민망하다고 말한다.

예전엔 졸업식은 가족에겐 의미 있는 행사로 여겼다. 대학 졸업식장에 온 부모에게 학사모와 가운을 씌워주며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졸업앨범은 당연히 구입하는 것이었고 학생이 신청하지 않아도 부모가 구매를 강요하기도 했다. 취업난으로 힘겨운 삶을 살아야 하는 학생들에게 어찌보면 추억은 사치인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앞에는 문방구가 사라지고 있다.

문방구는 친구들과 등·하교 시간을 이용해 들르는 방앗간이었다. 쫀디기, 쥐포, 쫄쫄이를 입에 물고 달고나로 손기술을 자랑했던 문방구에서 아이들은 유년시절을 보냈다. 준비물을 집에서 가져오지 않아도 걱정하지 않았다. 스케치북, 크레파스, 아코디언, 실내화 등 없는 것 빼고 모두 갖춰진 문방구가 학교 앞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문방구 집 친구는 반에서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문방구도 시대 흐름에 밀려 설 자리를 잃었다.

사라지는 문구점을 살리기 위해 한국문구유통업협동조합은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사라지는 문구점 이대로 둘것인가?'토론회를 개최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2년 1만4731개에 달했던 학교 앞 문구점은 2019년 기준 약 5000여 곳이 폐업했고 매년 약 500곳씩 문을 닫고 있다. 2022년 기준 8000~8500개의 문구소매점만 운영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문방구가 급감하는 이유는 학령인구 감소, 대형 생활용품 유통업체·대형마트 영업장의 확장, 중견·대기업들의 온라인 쇼핑몰을 통한 저가 공세 등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 2011년`학습 준비물 없는 학교'제도 시행으로 학생들이 문방구에서 구입했던 준비물을 세금으로 지원한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최경춘 전 연암대 교수는 `전국문구점 살리기를 위한 원인분석과 대처방안'을 주제로 한 발제에서“문구점이 사라지면 수만가지 문구용품이 사라져 학생들의 선택권이 없어지고 대형매장 및 대형 e-커머스 독과점 시 가격횡포가 시작되며 학생들에겐 놀이터가 어른들에겐 추억이 사라진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 최 전 교수는 업체검증을 위한 지역문구점 인증제 도입, 지역문구점 활성화 조례제정, 문구소매업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사라지는 추억 속에서 한편에선 추억을 소환하고 있다.

최근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만화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대표적이다. 지난달 4일 개봉한 이 영화는 199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의 추억을 소환하며 7일 기준 누적 관객 243만6507명을 기록했다. 관객 70%가 3040대다. 슬램덩크 등 영향으로 G마켓과 옥션에서는 만화책 수요가 급증해 슬램덩크 만화책 판매 신장률은 전년보다 7530% 늘었다.

치열한 입시경쟁과 취업난으로 학생들에게 추억조차 누릴 자유를 주지 않은 것은 아닌지 기성세대들이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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