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23.02.0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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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내 입에서 익숙한 말이다. 손님이 들어오면 반갑게 맞이하는 첫 번째 인사인 만큼 모양새도 흐트러지면 안 된다. 그 한 마디에 담긴 진정성까지 잊지 않으며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다. 손님을 맞는 여러 가지 조건들에 대해서도 긴장의 끈은 항상 이렇게 스스로를 들여다보도록 한다.

음식장사가 천직이 되어 버렸다. 정년퇴임이란 말이 무색한 처지라고 하지만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입장만으로도 슬픈 생각을 하고는 했었다. 그만큼 여러모로 제한되는 자유가 있기에 그렇다. 이젠 슬슬 놓아버릴 시기가 돌아온 것을 의식해가고 있는 현실이다.

한편 남들은 그 나이에 다시 시작하는 일도 있는데, 하는 데까지 하라며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 말은 무더위에서 청량한 그늘을 만난 기분만큼이나 위로가 되고 있다.

돌아볼수록 삶의 터전은 감사의 연속이었다. 닳아진 물건들조차 지금껏 우리 가족을 살게 한 것들이니 어느 것 하나 정겹지 않을 수가 없다. 한 때는 보수 할 곳과 교체해야 할 물건들이 생겨나면 나도 모르게 그만두고 싶은 생각에 빠져들고는 했다. 그러나 스러지는 내 감정 속에서 항상 어떤 외침이 들려오는 거였다. 일어나라는, 용기를 가지라는, 작지만 또렷한 메시지라고 하겠다. 느린 걸음일지언정 이제는 그 울림을 따라 여유롭게 가려 노력하는 중이다.

오늘도 손님에게 반가운 인사를 한다. `어서 오세요, 이리 앉으세요.' 일상적이고도 상투적인 인사가 절대 아니다. 낯선 사람이지만 지금껏 삶을 지탱하게 만든 근원의 대상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늘 그 마음으로 대하다 보니 손님이 떠난 후에도 처음과 나중까지, 내가 어떻게 행동했는가에 생각해보는 버릇도 생겨났다. 손님이 모든 것에서 만족할 수는 없을 터이지만.

내 입장에서는 또 다른 식견도 생겨난다. 소소한 삶의 현장을 가까이에서 간접적으로 체험한다고나 할까. 각자가 지닌 애환을 쏟으며 왁자하게 나누는 이야기가 귓전에 저절로 들려와서 그렇다. 한 마디도 거들 수는 없다. 요즘은 가족끼리 운영하는 실정이다 보니 주방 일에서부터 서빙부분까지 관여하다가 종종 겪게 되는 풍경들이다. 나처럼 모두들 저만큼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에 조용한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계절이 바뀌면 나 역시도 흐름을 탄다. 그 속에 감각을 싣고서 사람의 마음까지 움직이기를 하는 바람 때문이다. 봄에는 풋나물로, 여름에는 싱그러운 채소로, 가을에는 여물고 푸짐한 것으로, 겨울은 따뜻하고 곰삭아진 특별한 것들로 입맛을 돋워주려고 애를 쓴다. 달리 보면 고되지만 이 분야도 한편의 매력을 느끼는 직업이 아닐까 싶다.

오늘도 여전히 가게 문을 연다. 건강하니까 가능하다. 구석구석 가벼운 마음으로 준비하며 손님을 기다린다. 그 정신이 지켜가는 재산목록 첫 번째이다.

이렇게 나의 정년은 길어져 가고만 있다. 자영업의 특색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순리대로 꾸려가고자 한다. 어느덧 자연스럽고 노련한 나 자신이 되었나 보다. 어서 오세요, 맛있게 드세요, 안녕히 가세요, 평범한 인사인 것 같아도 그 속에서 현재진행형인 삶 자체가 돌이켜 보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고맙고 보람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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