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부쟁이 둘레길
쑥부쟁이 둘레길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3.02.07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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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물 위로 놓인 데크 길이 발을 디딜 때 마다 소리를 낸다. 추위에 나무로 만든 길도 얼은 모양이다. 그 많던 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저수지가 꽁꽁 얼었다. 새 한 마리도 보이질 않는다. 마음이 번잡스러워 나선 길이다. 이런 날은 책을 읽어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고, 글을 쓰려 해도 쉬이 문장들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럴 때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한다. 오늘은 혼자 용산 저수지에 만들어진 쑥부쟁이 둘레길을 찾았다. 생각을 정리하기에 이곳보다 좋은 곳은 없다. 가을이 되면 이곳에는 보랏빛 쑥부쟁이들이 하늘하늘 바람에 춤을 추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잠을 자는 듯 고요하기만 하다.

입춘이 지나니 땅도 봄기운이 완연하다. 저수지 안은 얼락녹을락해서인지 꽁꽁 언 저수지 중간 중간에 물이 고인 곳도 보인다. 날씨가 그새 많이 풀렸기 때문일 것이다. 간간이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보인다. 나처럼 혼자 걷는 이도 있고, 친구와 또는 부부가 함께 걷는 이도 있다. 모두들 걷는 속도가 빠르다.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나만이 천천히 걷는다. 어느새 녹기 시작한 땅도 한참을 서서 보기도 하고, 빈 하늘도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산 쪽으로 나 있는 길을 걸을 때는 혹시나 산새 소리라도 들릴까 귀를 쫑긋 세우며 걸었다. 바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한 시간이다. 능놀며 걷는 길이어서 그런지 공기도 달기만 하다.

용산 저수지에 쑥부쟁이 둘레길이 생긴 것은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다. 그것도 처음에는 용산 저수지만을 도는 길이었다. 그러던 것이 몇 년 전부터는 봉학골 산림욕장으로 이어지는 둘레길도 조성이 되었다. 저수지를 돌고 난 다음 산림욕장으로 향한 길을 올라가다보면 소나무향에 마음이 절로 정화가 된다. 음성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이런 휴식 공간이 있다니 축복받은 지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쑥부쟁이 둘레길은 어느 계절이건 아름다운 길이다. 지금처럼 추운 겨울에도 한적하니 마음을 쉬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얼마 있지 않으면 곧 봄이 온다. 봄이 오면 이 둘레길은 또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을 반긴다. 저수지를 발아래 둔 산에서는 산수유와 생강나무 꽃이 먼저 사람들을 반길 것이고 뒤이어 분홍빛 진달래는 수줍은 모습으로 얼굴을 붉힐 터이다. 여름이면 더위를 피해 봉학골을 찾은 사람들에게 이 둘레길은 지친 마음을 다독여 줄 것이다.

지난여름 소나기가 쏟아지는 날 친구와 이 길을 걸었다. 우산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소녀 시절로 돌아 간 듯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이 길은 누구와 걸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친구와 걸으면 속내를 모두 털어 놓게 되고, 부부가 걸으면 이상하게도 도타운 정이 새록새록 생겨나기도 한다. 아주 가끔은 혼자 걷고 싶은 때도 있는데 그것은 지금처럼 무언가 풀리지 않을 때다. 물 위를 미끄러지듯 헤엄치는 오리들을 보거나, 거대한 봉학골 산이 물속에 잠긴 것을 바라보다 보면 세상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가을이면 쑥부쟁이 길의 진정한 맛을 보게 된다. 이 길의 주인은 분명 쑥부쟁이는 맞지만 그 외에도 키 작은 고마리 꽃부터 보랏빛 꽃향유와 개여뀌도 이 길을 밝혀주는 또 다른 주인공들이다. 유독 가을이면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이유도 아마 그 작은 꽃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새 둘레길 후미 부분이다. 꽁꽁 언 물 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물 버들에 넋을 잃고 말았다. 가지마다 붉은 빛으로 물이 올랐다. 여리고 가는 가지마다에는 작은 겨울눈이 바짝 몸을 웅크렸다. 움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는 게다. 온 몸을 조이는 얼음 속에서도 버들은 저리도 겨울을 버티고, 봄을 준비하고 있었구나. 삶이 온통 고통일지라도 생명의 빛은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희망이라는 듯 물 버들은 그렇게 거룩한 성자가 되어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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