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고무신과 화무십일홍
낡은 고무신과 화무십일홍
  • 연서진 시인
  • 승인 2023.02.0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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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연서진 시인
연서진 시인

 

운동하면서 허벅지 근육량을 늘리기 위해 이너 타이에 앉아 무게를 한 칸 올렸다. 그 때문에 근육이 놀랐는지 다음 날 저녁부터 허리 통증이 시작됐다. 얼마 전 넘어져 다친 무릎과 손목 통증까지 한꺼번에 밀려와 일찌감치 가게 문을 닫았다. 자고 나면 변하는 나의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느낀 순간이었다.

내 나이 오십이 되면서 몸에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어디가 딱히 아픈 곳이 없는데도 몸이 개운하지 않았다. 갱년기가 되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내던 중 전혀 생각하지 못한 기관지 확장증이라는 병이 생겼다. 얼마 후 또 다른 질환으로 몇 차례 수술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단기 기억상실증까지 겪어 하루를 잃어버리니 모든 원망의 화살은 애먼 남편에게로 향했다.

중년을 겪으며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경험하는 시기라는 걸 온몸으로 체감하던 때였다. 젊음이 사라진다는 상실감과 빈 둥지 증후군으로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다. 무료한 나의 일상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건강한 체력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그날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사람이 늙어 가는 건 나이 듦이 아니라 변화를 멈추기 때문이다는 말이 있다. 새로 시작한 공부와 일을 병행하며 바쁘게 살았다. 남편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그런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한집에 살며 서로 다른 생각으로 사는 우리 부부는 말없이 지내는 시간이 늘어만 갔다.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나에게 삶은 무엇일까? 과연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었던 걸까? 끊임없는 물음표에 대한 결론은 `나'자신이었다. 내가 없는 삶은 가족도 재산도 아님을 깨닫는 순간, 엄마가 떠올랐다. 스무 살 무렵 엄마의 낭창한 다리가 부럽던 적이 있었다. 가느다란 다리 외에 별 느낌 없이 보이던 엄마 무릎 주위의 시커먼 뜸 자국. 그것이 고단한 삶의 무게였다는 것을 오십이 넘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병원 갔다가 집에 들어서니 현관에 못 보던 신발이 놓여 있다. 신발 테두리에 노란 털이 듬성듬성 빠진 낡은 털 고무신이다.

“이 신발 뭐야?”

“아 그거, 내가 사무실에서 신는 신발인데 모르고 신고 온 거야.”

남편은 슬리퍼를 신고 현장과 사무실을 자주 오가며 일한다. 발이 시리던 차에 장터 노점에 있던 털 고무신을 보고 얼른 사 신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털 빠지고 낡은 고무신은 전혀 따뜻해 보이지 않는다. 운동화를 사자고 하니 신을 사람이 편하면 된다며 손사래를 친다. 노인들이 신을 것만 같은 털 고무신이 나는 생경한데, 남편은 연신 싸고 편한 것만 찾는다. 불편한 마음이 들어 나는 낡은 털 고무신으로 자꾸만 눈길이 간다.

통증에 잔뜩 찌푸린 얼굴로 입에 약을 털어 넣고 누웠다. 아프냐는 남편의 말에 운동해서 근육이 놀란 것 같다고 했다. 운동을 적당히 해야지 무리해서 그렇지 않냐는 남편의 말이 맞는 말인데도 잔소리로 들렸다.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 낡은 털 고무신이 동동 떠다닌다.

다음 날 그 고무신을 신고 현관을 나서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니 정수리 가르마에 하얀 눈이 내려앉았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화무십일홍이 떠올랐다. 일하는 내내 낡은 털 고무신을 신은 남편이 생각났다. 뭉근한 무엇이 가슴속에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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