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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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혜 수필가
  • 승인 2023.01.3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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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은혜 수필가
김은혜 수필가

 

요즘 안방극장인 텔레비전에는 십여 년 전 유행했던 통 넓은 바지를 입은 여인이 등장한다.

유행은 왜 돌고 도는가. 권태기를 없애려는 인간의 심리 현상인가? 아니면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소비자의 마음을 충동시키려는 술수인가.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뿐만이 아니라 아무리 평정을 고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은연중에 유행에 젖어 들기 마련이다. 한 가지만 유행한다면 자기 주관을 소신껏 이행하고 살 수 있으련만 언어, 색상, 디자인, 의류, 음악 심지어 얼굴까지도 유행 따라 교정한다.

제자가 선생님을 쌤이라 부른다. 쌤이란 언어가 유행한 지 오래다. 존댓말인지 반말인지 구분이 안 된다. 쌤이란 용어가 점잖지도 공손함도 없는 것 같아 초등학교 선생인 자녀에게 바로 잡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비치었다. 어떠냐며 그게 좋단다. 스승과 제자의 벽을 허무는 지름길인지는 몰라도 왠지 제자가 스승을 친구처럼 대함은 아니잖나 싶다.

나는 너무 심한 유행은 적당히 유행하다 빨리 잦아들기를 바라는 사람 중에 하나다.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안 되는 유행이 오래도록 지속하면 염려될 때가 종종 있다. 특히 여자아이들이 입고 다니는 배꼽이 나오는 티와 허벅지까지 보이는 짧은 치마가 그렇다. 의류 상가에 걸어놓은 치마와 반바지를 뼘으로 재면 두 뼘도 채 안 되는 것도 있다. 팬티인지 바지인지 분간이 안 간다. 바라기는 디자인하는 업계 측에서 이런 옷을 만들지 않으면 사는 이도 없을 터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나는 손녀가 다섯 명이다. 긴 바지만 고집하는 손녀가 셋이고 치마를 좋아하는 손녀는 둘이다. 요즘은 여학교 교복 치마 기장도 많이 짧아진다고 한다. 학교에 화장하고 와도 귀에 구멍을 뚫어도 교사들이 다 봐준단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는 교단에 설 수 없다니 참으로 걱정이다. 우리 학창 시절에는 교내에서 머리도 치마 기장도 다 간섭했었다.

해가 갈수록 남자가 주방에서 음식 만드는 직업이 유행한다. 의외로 남자들이 여자들이 손으로 하는 일을 즐기는 편이다. 칼과 프라이팬을 잡는 주방장의 자리는 쉽사리 잦아들지 않을 것 같다. 우리 집만 해도 야외로 나가려면 장소와 메뉴를 선택하는 것은 두 아들 몫이다. 그러니 주방장은 의당 아들과 사위다. 뒤에서 잔심부름을 돕는 며느리와 딸이 매우 좋아한다. 처음에는 이 모습이 어색해 울며 겨자 먹듯이 억지로 기분 좋은 척했다. 요즘은 똑같은 자식인데 누가 하면 어쩌랴 마음을 비우니 편하다. 마트에 가면 남자들이 먹을거리를 고르고 있는 모습은 일상이다.

내 연배인 남자 지인은 이렇게 말한다. 남자의 전성기는 우리 대에서 끝이 났다고. 그리고 하는 말 본인은 아들만 둘인데 아들이 불쌍하다고 한다. 남자들이 군림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그런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하다. 그 시절 남자들은 차려 놓은 밥상만 방으로 들고 와도 시어른의 인상이 곱지 않았으니까. 지인이 말한 남자들의 전성기는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 그 이유는 우리 세대가 아들딸 구별하지 않고 교육시킨 결과다. 직업에도 성별이 사라졌다. 현재는 남자 일 여자 일이 따로 없다. 남자 미용사가 여자 머리를 손질하는 사회가 되었다. 가정일도 먼저 귀가한 사람 몫이다. 그 옛날 정초에 여자를 만나면 재수 없다는 남존여비란 이제 박물관에서나 찾아봐야 할 정도로 사회는 많이 바뀌었다.

여자와 남자를 동등하게 대우하는 국가가 모든 면에 앞서간단다. 그렇다면 돌고 도는 유행이 산업을, 경제를 부흥시키는 지름길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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