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사기 대출 시스템부터 손봐야
전세 사기 대출 시스템부터 손봐야
  • 이재경 기자
  • 승인 2023.01.30 16: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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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국장(천안주재)
이재경 국장(천안주재)

 

“전수 조사를 통해 (전세 사기에 가담하는) 악덕 공인중개사를 반드시 적발하겠다. 원스트라이크 아웃을 적용해 곧바로 공인중개사 자격을 박탈하고 무관용을 원칙으로 일벌백계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대노했다. 공인중개사 단체를 향해 지난 일요일 굳은 표정으로 쓴소리를 내뱉었다.

일부 공인중개사들이 무주택 청년 전세 대출 사기에 가담했다는 뉴스가 보도된 직후다.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29일 청년 전세대출금 명목으로 총 83억원을 편취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로 대출 사기 일당 151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중 총책 A씨와 대출 브로커 등 14명을 구속했는데 적발된 피의자 가운데 부동산 공인중개사들도 무려 18명이나 끼어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이번에 적발된 전세 대출금 사기 일당의 수법은 치밀하고 계획적이었다. 사기를 지휘하고 주도한 총책 A씨는 수도권과 대구, 대전 등지에서 집값과 전세금의 차이가 거의 없는 이른바 `깡통 전세' 주택 83채를 매입했다.

자기 자본 한 푼 없이 전세보증금 채무를 승계하는 방식으로 매입하고 전국 각지의 브로커들에게 허위 임차인을 모집했다. 명의만 빌려주면 거액의 수수료를 챙겨주겠다는 말에 현혹돼 가담한 가짜 임차인들은 브로커들이 미리 매수해놓은 악덕 공인중개사들로부터 허위 전세 계약서를 작성하고 이를 은행과 보증기관 등에 제출해 1채 당 평균 1억원의 대출금을 받아 챙겼다.

이 과정에서 은행 등 금융 보증기관은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사기에 가담한 공인중개사가 작성한 허위 전세 계약서를 그대로 믿고 돈을 내줬다.

어떤 공인중개사들은 자신들이 중개·알선하지도 않은 전세 물건에 대해 허위 전세 계약서를 작성해주고 1건당 수십만원씩의 수수료를 챙겼다.

총책 A씨의 주도면밀한 지휘하에 브로커, 명의를 빌려준 가짜 임차인, 악덕 공인중개사에다 최종적으로 이런 과정을 새까맣게 모른채 눈뜬 장님이 돼 대출을 실행, 보증해준 금융기관 직원들까지 모두 4단계에 걸친 대출 사기 행각이었다.

이번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면서 어처구니 없고 한심한 국내 금융 기관의 대출 시스템이 도마에 오르게 됐다.

은행 등 보증기관은 이들 사기단이 83채의 가짜 임대 건물과 가짜 전세 계약서를 들이밀고 전세 대출을 요청하자 악덕 공인중개사의 `도장'이 찍힌 계약서만 믿고 대출을 실행했다. 수도권을 비롯해 대전, 광주 등 도시지역 수십 곳의 은행들이 이들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다.

원희룡 장관이 대노해 부동산 중개업소까지 찾아가 엄벌을 천명한 이유다. 하지만 이쯤이면 공인중개사 탓만 할 일도 아니다. 물론 악덕 중개사는 당연히 퇴출시켜야 한다.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10억원에 가까운 돈을 움직이는 전세 대출 사기를 막기 위한 금융기관의 철저한 검증시스템이 필요하다.

신용보증재단의 모범 사례가 그것이다. 신용보증재단은 소상공인 대출 보증 심사를 진행할 때 항상 현장 실사에 나선다. 실제 대출 희망자가 영업 활동을 제대로 하는지, 본인이 맞는 지 등 아주 꼼꼼하고 세밀하게 조사해 최종 보증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나 이번 전세 대출 사기 사건에서는 이런 시스템이 가동되지 않았다. 은행은 책상에 앉아 서류만 보고 대출을 실행했다. 사기꾼들이 만든 가짜 서류 몇장에 나라 곳간이 뻥뻥 뚫려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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