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으로 무능을 덮을 수 없다
정쟁으로 무능을 덮을 수 없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3.01.29 19: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난방비 폭탄이 서민들의 일상을 강타하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네탓 공방만 벌이고 있다. 여당은 지지율과 표만 의식해 가스요금 현실화를 외면했기 때문이라며 전 정부에 책임을 넘기고, 야당은 겨울철 난방대란이 예고됐음에도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며 정부의 무능을 질타한다.

문재인 정부가 가스요금 조정을 등한시한 것은 사실이다. 가스공사 적자가 기하급수로 누적되고 국제가격이 지속적으로 인상됐음에도 서민경제를 구실로 커져가는 눈덩이를 방치한 점은 비판받을 만 하다. 가스공사가 지난 2021년에만 6차례에 걸쳐 인상을 요청했지만 정부는 한 번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코로나 시국에 서민의 고통을 가중시킬 공공요금 인상 결정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짐을 더욱 무겁게 만들어 윤석열 정부에 넘긴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당은 전 정부에 대한 비판을 이쯤에서 멈추고 대책에 올인했어야 했다. 상관관계가 불확실한 탈원전 정책까지 난방대란의 주범으로 끌어들이며 책임전가에 급급하다 정책을 주도해야 할 집권정당의 위신을 잃었다. 부랴부랴 짜낸 긴급 대책도 대통령실에서 나오지 않았던가.

가스값 폭등 못지않게 논란이 되는 것이 충분히 예고된 사태에 대처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이다. 정부는 지난해 네차례에 걸쳐 가스요금을 38% 인상했지만 난방으로 가스 수요가 폭증하는 겨울철에 닥칠 문제를 예견하지 못했다. 갑자기 늘어난 가스요금으로 고통받을 취약계층 보호대책을 세우고 국민들에게도 사실을 주지시켜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했다.

하지만 정부는 거꾸로 갔다. 기초생활수급자 등에 지원하는 에너지 바우처 예산을 지난해보다 473억원이나 줄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해 전세계가 혹독한 겨울을 맞을 것이라는 언론 보도들이 지난해 여름부터 지구촌을 긴장시켰음에도 말이다. 반년 전에 공공연하게 경고된 사태를 우리 정부와 국민은 올 1월 가스요금 고지서를 받아든 후에야 깨달았다.

야당 역시 한치앞도 내다보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거대 의석으로 대의기구를 장악한 정당이 미구에 국민에게 닥칠 재앙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말로만 민생을 외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여야가 내놓은 각각의 대책도 거리가 까마득하다. 정부는 취약계층 117만6000가구의 에너지바우처 지원금과 사회적배려 대상 160만가구의 가스비 할인폭을 각각 2배 늘리기로 했다. 반면 민주당은 7조2000억원을 에너지 고물가 지원금으르 풀자는 입장이다. 소득 하위 80%인 4100만명에게 1인당 10만~25만원을 차등 지원하자는 것이다. 정부 안은 법정 취약계층만 지원해 서민 전반의 고충을 덜기에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고, 야당 안은 막대한 예산조달 방안을 고민하지않은 방만한 대책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서민의 시름은 한파가 기승을 부린 1월분 고지서가 발부될 다음 달이 더 깊어질 게 뻔하다. 여야가 정쟁에 허비할 시간이 없다는 얘기다.

여당이 그동안 반대로 일관해온 횡재세도 이참에 전향적으로 재검토 했으면 좋겠다.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돌발적인 요인으로 특수를 누린 대기업의 이익 일부를 빈곤층 복지로 환원하는 횡재세 도입은 국제적 추세가 되고 있다. 더욱이 우리 기업들은 가정용보다 싼 산업용 전기를 공급받아 연간 2조원이 넘는 상대적 혜택을 받는다. 국내 정유4사의 경우 지난해 국제 원유가 급등으로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올리고도 상반기에만 2823억원의 전기요금을 감면받았다. 기업 스스로 일반 소비자인 국민과 고통을 분담하겠다고 나서야 할 판이지만 묵묵부답이다. 야당이 찬성하고 법안을 발의했다는 게 횡재세 반대 사유가 돼서는 안된다. 상대가 왼쪽으로 가면 우리는 무조건 오른쪽으로 간다는 어깃장 정치로 민생문제를 풀 수는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