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대물림
가난의 대물림
  • 김금란 기자
  • 승인 2023.01.25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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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금란 부국장
김금란 부국장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다. 그러나 살아보니 되도록이면 안 하고 싶은 게 고생이다.

땀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의지대로 안 되는 게 세상살이 아니던가.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엔 교육이 계층이동의 사다리였다. 그러나 개천의 용은 사라지면서 자리잡은 게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등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결정한다고 주장하는 수저론이다. 결국 비빌 언덕이 있어야 사회에서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오태희 한국은행 과장과 이장연 인천대 교수가 지난해 한국경제학회에 게재한 논문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의 흙수저 디스카운트 효과'에 따르면 부모의 재력 부족이 자녀의 고용의 질 및 임금 경로에 유의미한 음(-)의 영향을 미치는 흙수저 디스카운트 효과(Wooden-spoon Discount Effect)가 포착됐다.

특히 금융자산 보유 하위 25% 부모의 자녀는 상위 25%에 비해 양질의 일자리를 가질 확률이 약 8%포인트 낮았다.

또한 첫 일자리에서의 임금 수준도 11% 낮았고 근무연수가 늘어날수록 임금 격차가 점차 확대됐다. 소득분 위 4분위에 속하는 부동산 보유 가구 중 동일한 분위의 금융자산을 보유하는 경우는 47.3%인 반면 1분위의 금융자산 보유그룹에 속하는 경우는 10.7%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 과장과 이 교수는 “`흙수저'에서 `금수저'로 올라설 수 있는 계층 사다리 복원을 위해 정부가 부모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청년층 구직자의 신용제약을 완화해 노동시장 진입 초기단계부터 발생하는 격차를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난을 물려받지 않기 위해 우리는`직업'에 매달린다. 전문직이면서 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직업으로`의사'가 꼽힌다.

그래서일까? 학령인구 감소로 전국 대학들이 신입생 모집에 비상이 걸렸지만 의대만은 예외다.

2023학년도 대입 수시모집에서 서울·수도권 소재 의대에 합격한 수험생들은 모두 등록을 마친 것으로 나타났다.

종로학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올해 서울·수도권 의대 12곳에서 수시모집 최초 합격자가 등록을 하지 않아 정시모집으로 이월된 인원은 한 명도 없었다. 전국 지역 대학의 의대 39곳에서의 미등록자는 겨우 12명에 불과했다. 의대 미등록 인원은 매년 감소 추세를 보였다. 2019학년도 213명이었던 미등록자는 2020학년도 162명, 2021학년도 157명, 2022학년도 63명으로 감소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간한 연구보고서 `2020 한국의 직업정보'를 보면 평균 소득이 높은 직업 50개 가운데 의사 직군은 17개를 차지했다. 소득이 가장 높은 직업은 이비인후과의사(1억 3934만원)였다. 이어 성형외과의사(1억 3230만원), 피부과의사(1억 3043만원), 외과의사(1억 2667만원), 안과의사(1억 2280만원), 산부인과의사(1억 2123만원) 순으로 나타났다.

충북 지역 직업계고에 매년 장학금을 기탁하고 있는 한 기업인은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 가장 공부 잘하는 인재들이 공대가 아닌 의대를 선택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지만 달라질 것은 없다.

영재학교를 졸업해도 의대를 진학하고 영재학교들은 신입생 모집에서 의약계열 진학률을 홍보 수단으로 활용한다. 성적이 최상위권이면 적성과 상관없이 의대 진학을 권하는 교실. 교육이 계층 간 이동 사다리 역할을 하기보다 계층 대물림 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지만 교육 당국이라고 묘수가 있을지 의문이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어 서러운 데 가난까지 대물림해야 하는 세상. 정말 가난은 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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