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봉과 남신의 경계점
수봉과 남신의 경계점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3.01.24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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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음성천은 음성 읍내에 사는 초등학교 아이들에게는 경계점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읍내의 초등학교는 두 군데다. 수봉초등학교와 남신초등학교다. 음성 시내 중앙을 가로지르는 음성천을 경계로 입학할 초등학교가 정해진다. 문화동, 교동, 한벌리, 용산리의 주소지 학생은 수봉초등학교로 남천동, 오성동, 신천리, 소여리가 주소지로 되었으면 남신초등학교로 배정되었다.

지금은 읍내리로 통일되어 불리지만 예전은 동으로 나뉘어 불렸다. 지금은 학업의 평준화로 그런 일은 없지만 한때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수봉초등학교로 아이를 진학시키기 위해 주소를 옮긴다는 학부모들도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만해도 시내에서 두 초등학교 남학생들이 만나면 주먹다짐을 하곤 했다. 여학생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거리에서 만나면 은근히 견제하거나 상대 학교에 대한 비하는 다반사였다. 두 학교 학생들은 나름으로 자신들의 학교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다. 수봉초등학교는 1911년 일제 강점기 시대에 설립되었다. 학교 건물이 웅장한 만큼 운동장 또한 넓었다. 그에 반해 남신초등학교는 1968년에 설립된 신생학교였다. 학교 건물도 수봉초등학교에 비해 작았고 운동장도 그리 넓지 않았다. 학생 수로 따지면 두 학교 모두 학년별 4학급 정도로 비등했지만 왠지 수봉초등학교 학생 수가 많았다는 착각을 했던 듯하다. 학교의 역사를 따지면 할 말이 없었지만 남신초등학교의 학생들은 실력을 앞세워 수봉초등학교 학생들을 만나면 독립투사라도 되는 양 맞서 싸우려 했다. 사실 어느 학교 학생들이 학업 실력이 더 좋은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 집은 남신초등학교와 지척에 있어 자연히 그 학교로 배정되었다. 남신초등학교에 대한 소문은 그때도 무성했다. 공동묘지를 밀고 들어선 학교라 공사를 하면서 사람의 뼈가 수없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실제로 그때 친구들과 학교 앞쪽으로 나있던 길로 하교를 하다 보면 언덕이 나왔는데, 우리는 그곳에서 여러 개의 무덤을 만나곤 했다. 유난히 그곳은 볕이 잘 들어 겨울이면 바람이 들지 않는 양달에 모여앉아 놀곤 했다. 그때만 해도 무덤은 시골아이들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았다. 일종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가끔 남자애들이 사람의 뼈를 주워서 놀았다는 소리도 들었으나 그것이 사실인지는 눈으로 보지 못했으니 알 길은 없다.

남신초등학교가 자리한 위치는 옛 지명으로는 여수골이었다. 여우가 많이 나온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교가에도 `여수골 언덕 위에 우뚝이 서서 ~~'라고 나온다. 화장실에 대한 괴담도 많았다. 물론 어느 학교나 무서운 괴담은 하나쯤 있었겠지만 우리 학교는 장소가 그래서인지 유난히 그 수위가 높았다. 어둑해질 무렵은 물론이고 낮에도 화장실을 혼자 가기 쉽지 않았다. 지금은 모든 학교가 건물 안에 화장실이 있지만 당시에는 건물과 떨어진 곳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갑자기 볼일을 보다 밑에서 무서운 것이라도 나올까 하는 생각에 두 눈을 질끈 감고 볼일을 보곤 했다.

수봉과 남신의 학생들은 중학교 진학 후에도 겯고틀기를 이어간다. 서로에 대한 견제는 입학 후 치러지는 1학년 각 반의 반장을 뽑을 때 두드러진다. 반장 후보들은 대개가 읍내의 두 초등학교 출신의 학생들이었다. 서로 출신 학교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면소재지의 학생들을 포섭하느라 바빴다. 자존심이 걸린 승부였다. 하지만 중학교 생활이 시나브로 익숙해지고 무르녹을 때면 어느 초등학교 출신인지는 까마득하게 잊히고 만다. 졸업할 무렵이면 더 이상 초등학교시절의 그림자는 볼 수 없다. 나와 제일 친한 친구도 수봉초등학교 출신이다. 그 친구는 시장 통에서 가게를 하고 있다. 시장을 가면 들르고, 따뜻한 정이 그리우면 만나는 그 친구와 나는 어쩌면 형제자매보다 더 속정이 깊다.

고추바람이 분다. 바람이 갈앉고 추위가 수그러들면 친구와 음성천을 나가야겠다. 그곳에 가면 우리의 이야기는 언제나 노래가 되어 흐르곤 했다. 이번에도 우리는 두 곳의 물줄기가 합쳐진다는 합수머리에서 하나가 되어 되돌아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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