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서점의 역할
중고 서점의 역할
  • 심진규 진천 상신초 교사(동화작가)
  • 승인 2023.01.15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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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심진규 진천 상신초 교사(동화작가)
심진규 진천 상신초 교사(동화작가)

 

중고 서점이라는 낱말을 들으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오래된 책이 쌓여있고, 나이 지긋한 주인이 책 정리하고 있으며, 돈이 부족한 학생이 헌책이나마 사서 공부하려고 서점에 들어오는 장면이 떠올라요. 너무 영화 같은 장면인가요? 중고 서점이라는 말보다 헌책방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장면이죠.

하지만 요즘 중고 서점은 넓고 쾌적한 공간에 찾는 책이 있는지 검색할 수 있는 검색기까지 있는 공간입니다. 또 하나의 문화 공간이 되어가고 있지요.

그런데 저는 현재 중고 서점의 모습은 중고 서점 본연의 역할을 넘어서는 것은 아닌지 의문입니다.

얼마 전 아는 작가님께서 새 책 출간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책방에 가서 사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 인터넷 서점에 접속해서 주문하려고 책 제목 검색했어요. 책 소개를 더 보려고 화면을 아래로 내리다 보니 새 책인데 `중고로 팔기'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와요. 안타까움을 넘어 화가 났어요. 이제 막 출간된 책을 중고로 팔라는 메시지가 뜨다니요.

중고 거래가 많은 사회에서 책을 중고로 사고 파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어요. 독자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다 읽은 책 보관할 곳도 없을 수 있고, 적은 금액으로나마 판매해서 다른 책 사는데 쓸 수 있으니 좋은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책이 이렇게 거래되는 사례는 작가나 출판사 입장에서는 무척 속상한 일입니다.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절판되어 어쩔 수 없이 중고 서점에서 주문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책을 받아 펼쳐본 순간 깜짝 놀랐어요. 저자의 서명이 되어 있는 책이었어요. 책을 받는 사람 이름도 적혀있고요. 그렇다면 저자에게 선물을 받았던가, 책을 들고 가서 저자 서명을 받았을 텐데 이 책이 중고 서점에서 유통되고 있다니 만약 작가님이 보셨다면 얼마나 속상했을까요?

이런 현실을 보면서 중고 서점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주 오래전 팟캐스트에서 소개된 책을 사려고 했는데 이미 절판되었더라고요. 평소 알고 지내던 서점 직원께 구할 수 있는지 물어봤어요. 서점 직원께서 수소문한 끝에 중고 책이 있고 구할 수 있다고 하시더군요. 가격이 정가보다 30% 정도 비싼데 살 거냐고 물으시기에 바로 산다고 했어요. 오래된 책이나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책은 절판되어 새 책을 구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이런 경우 가격보다 더 비싼 값을 주고라도 구해서 보게 됩니다.

중고 서점이 이와 같은 역할을 해주면 어떨까요?

꼭 구해서 읽고 싶은데 절판되어 구하기 어려운 책을 구할 수 있는 통로 말입니다.

경제가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생필품 사려고 가게에 가면 실감합니다. 이렇게 어려운 때일수록 중고 거래가 많이 이루어집니다. 누군가에겐 필요 없는 물건이 다른 사람에겐 유용하게 쓰일 수도 있어요. 이런 시기에 중고로 책 거래하는 것을 잘못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 사회가 책을 바라보는 시각을 한 번쯤은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책이 사는 순간 값어치가 떨어져서 `얼마짜리'가 되지 않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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