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보려고 낳은 딸만 일곱 … “의지하며 지내는 모습 대견”
아들 보려고 낳은 딸만 일곱 … “의지하며 지내는 모습 대견”
  • 연지민 기자
  • 승인 2023.01.09 1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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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저출생시대 다둥이 가정을 응원합니다
청주 이명옥 오영만 부부
마흔둘에 막내 아들 … 다자녀 혜택 없이 8남매 키워
학비 걱정에 심한 우울증도 … 자녀들은 오히려 당당
“낳고 기르는 일 힘들지만 아이들 통해 큰 행복 느껴”

 

청주 문의면 구사리마을의 이명옥 이장(61). 21살에 시집와 40년째 구사리에 살고 있다는 그는 남편 오영만씨(67)와 8남매를 낳았다. 당시는 “아들 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기르자”, “둘도 많다. 하나만 낳자”라는 구호가 사회 통념이 되던 시기. 요즘처럼 다자녀 혜택도 하나 받지 못하고 남편과 밤낮없이 농사일로 대가족 살림을 꾸렸다.

“21살에 시집왔어요. 친정아버지가 일찍부터 몸이 안 좋아 자식들을 일찍 결혼시키셨죠. 옆 동네에서 시집와서 시부모와 시동생 다섯과 함께 살았어요. 첫째 아이를 22살에 낳고 줄줄이 8남매를 낳았으니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결혼할 당시 `한 자녀 갖기 운동'이 한창이던 때라 그도 8남매를 낳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여섯째 딸을 낳고 다시는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손자를 원하는 시아버지의 소원이 남편의 소원이 되면서 마음을 바꿨다.

“시아버님은 둘째였지만 장남과 같으셨어요. 아버님댁에 유난히 딸이 많아 대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크셨던 것 같아요. 어느 날 남편이 뼈 빠지게 고생해도 다 키울 테니 아들을 낳았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남편이 안돼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일곱째 딸을 낳고 나이 마흔둘에 아들을 얻었어요. 사주에 손자 같은 자식 있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더라고요.”

어렵게 얻은 아들이 이제 대학생이다. 아직도 뒷바라지할 일이 남아있지만 사회에서 제 몫을 하며 사는 딸들이 부모를 챙기는 것을 보면 많이 낳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단다.

“사람들이 8명이라고 하면 어떻게 키웠느냐고 물어요. 한 방에서 자고 한 밥상에서 먹으며 옛날 식으로 키웠어요. 엄마는 언제나 호랭이 엄마였죠. 내 방 갖는 게 소원인 애들이었지만 부모가 어렵게 일하고 살아선지 서로서로 잘 챙겨주며 자랐어요.”

자녀가 많은 만큼 생활을 책임진 부모에겐 봄은 가장 무서운 계절이었다. 그 많은 아이가 학교 가야 하니 돈 들어갈 일이 셀 수 없었다. 잘 견뎌온 시간이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다.

“너무 힘들어서 다 놓고 싶을 때도 있었죠.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엄마만 바라보는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본 뒤 번쩍 정신을 차렸어요.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이 일찍 철이 들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하면서 용돈을 벌어 쓰고 대학도 자기 힘으로 갔어요. 누군가 도움을 준다고 하면 오히려 아이들이 아쉬운 소리 하지 말고 당당하게 살자고 했어요.”

특별하지 않게 키웠지만 너무나도 잘 자라준 아이들. 그 덕에 봉사활동과 마을을 위해 여러 단체직 회장을 맡으면서 사회 나눔 활동의 길을 걷고 있다.

“모든 가족들이 한 달에 한번은 꼭 만나는데 모두 모이면 21명입니다. 다 자란 딸들은 의논할 상대가 있어 너무 좋다고 해요. 키울 때 가난해서 힘들었지만 지금은 심심할 새가 없어요.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너무 행복합니다”

사연 많은 생활을 하며 다자녀를 키웠지만 결혼을 안 하거나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젊은이들의 생각에 반대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힘들지만 아이들을 통해서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게 그의 양육철학이다.

/연지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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