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매화
이른 매화
  • 김태봉 서원대 교수
  • 승인 2023.01.09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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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교수
김태봉 교수

절기상으로 소한(小寒)이 지나면 겨울은 한복판에 들어서게 된다. 추위는 극성을 부리지만, 밤이 차츰 짧아지는 등 봄이 멀리서나마 오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럴 즈음에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것이 매화이다. 매화는 분명히 봄의 꽃이지만, 이른 것은 아직 겨울일 때 개화한다. 말하자면 이른 매화는 겨울에 피는 봄꽃이다. 그래서 겨울의 눈꽃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하얗게 핀 이른 매화는 영락없이 눈처럼 보였을 것이다. 당(唐)의 시인 장위(張渭)도 매화와 눈꽃을 혼동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른 매화(早梅)



一樹寒梅白玉條(일수한매백옥조) 겨울 매화 한 그루 백옥처럼 하얀 꽃 달린 가지가



逈臨村路傍溪橋(형림촌로방계교) 멀리 시내 다리 옆 마을 길에 벋어 있네



不知近水花先發(부지근수화선발) 물에 가까이 있어서 꽃이 먼저 핀 것을 모르고



疑是經冬雪未銷(의시경동설미소) 지난겨울 눈이 안 녹은 것인가 했네







시인이 기거하는 곳인지, 아니면 어쩌다 찾은 곳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마을에 난 길을 따라가다 보면 시냇물을 건너기 위한 다리가 나타난다. 흔히 있는 장면이지만, 시인의 시선을 이곳에 멈추게 만든 것이 있었다.

시인의 실토처럼 처음에는 미처 녹지 않은 눈이라고 생각했었다.

아직 겨울이라서 잎 하나 달리지 않은 나뭇가지에 하얀 물체가 얹혀져 있다면, 그것은 보통 눈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그 나무가 매화나무가 아니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그 나무가 매화나무고, 그것도 시냇물 바로 옆에 서 있는 것이라면 사정이 다를 수 있다.

오랫동안 시인의 시선이 시냇물을 건너는 다리 옆에 서 있는 나뭇가지 위의 하얀 물체에 머문 것은 무언가 낌새가 이상해서였을 것이다. 그것이 겨울 나뭇가지에서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라면 시인의 시선은 바로 지나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무언가 다른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시인의 시선이 거기에 한동안 고정되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 다리를 오고 가며 여러 번 본 적이 있는 그 나무는 매화나무였다. 그렇다면, 그 나뭇가지에 하얗게 얹혀 있는 것이 단순히 눈이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은 바로 꽃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시냇물 근처에 있어서 꽃이 더 일찍 피었던 것이다. 봄을 발견한 시인의 환희도 매화 꽃만큼이나 환하게 피어나는 순간이다.

춥고 삭막한 겨울에 지친 사람들이 봄을 기다리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겨울에 만나는 봄꽃인 매화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안겨 주는 희망의 꽃이다. 우연히 지나던 마을의 시냇물 다리 옆에서 생각지도 않게 철 이른 매화꽃을 보게 된다면 아직 녹지 않은 눈으로 의심하기 십상일 테지만, 그 의심은 곧 더 큰 반가움으로 바뀌고 말 것이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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