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붕이는 내 친구(7)
붕붕이는 내 친구(7)
  • 김영선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3.01.05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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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김영선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연구원
김영선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연구원

 

`깃털처럼 날아가 어디에 처박히면 어쩌지? 줄넘기에 달라붙어 온종일 뱅글뱅글 돌 수도 있고, 손아귀에 쥐어지지도 않을 수 있어.' 붕붕은 요정이 두려워 어깨가 축 늘어졌다.

“그런 모양은 난 싫어.” 블랙홀 같은 구멍에 빠져서 어쩌면 영영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노릇이라서 허투루 생각하면 안 되었다. 젠장. 붕붕은 이마에 식은땀이 났다.

창고가 이번엔 조금씩 안으로 좁혀왔기 때문일까. 말 많던 하양과 까망이 도로 구멍 안으로 들어간 건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포기한 거야? 그럴 줄 알았어.” 천장에서 내려앉은 깜장이 붕붕을 흘겨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벽도 타박하는 것처럼 간격을 조여와 참깨처럼 몸통이 비틀려 기름이 될 것만 같았다. 눈에 보일 듯 말 듯 웅크린 벌레처럼 가슴이 졸았다. 작은 울림이 벽을 타고 느린 속도로 사방에 퍼졌다. 붕붕이는 환청이 들리는 줄로 착각하고 우울할 뻔했다. “약해 빠진 녀석!” 소리가 메아리칠 때마다 붕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애벌레를 닮은 가래떡처럼 길고 앙증맞은 빨간 물풍선이 구멍으로 들어와 공중에 꽃처럼 피었다. `난, 어째서 이 모양인 거야.' 붕붕은 풍선을 갖고 싶어서 팔을 벌리고 점프했다. 힘껏 점프 했으나 쉽지 않았다. 어깨가 가볍게 떨리고 몸이 움츠러들었다. 젠장. 야트막하게 떠오르는 기억들 때문에 기분이 상하고 다시 어지러웠다. 네모난 파란 풍선 하나가 순순히 내려오더니 주머니를 불룩불룩하게 만들고 소곤거렸다. “너는 용감한 아이야. 겁쟁이라는 별명은 아울리지 않아.” “그렇지, 네 말이 맞아!” 붕붕의 답변이 반갑다는 듯 풍선이 손뼉을 쳤다. 풍선의 기다란 몸통 끝이 구부러졌다. “너에게 빈정대는 애들하고 어울리면 안 돼! 기분이 나쁘고 네 성질도 고약해질 테니까.” 붕붕이는 제 편을 들어주는 손뼉 풍선이 고마웠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꾹 참았다. “넌 최고로 친절하고 용감한 아이야! 힘내!” 이 춤까지 추면서 치켜세웠다. 둥근 모양의 노랑 풍선이 몸을 납작하게 만들어 붕붕이 머리 위에 비누 거품을 만들었다. 빨간 풍선이 빨간 안경으로 변해서 붕붕이 귀에 걸터앉았다.

안경으로 보니까 거품이 어느새 무지개로 변했다. “야호! 신난다. 풍선들이 내 친구가 됐어, 이리 와서 함께 놀자.” 무지개 방울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고 붕붕은 특기인 댄스를 했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려와 어느새 웃음바다가 되었다. 빨간 풍선이 붕붕의 팔을 잡고 춤을 추고, 노랑 풍선이 마술을 부렸다. 주문을 왼 것도 아닌데 몸이 점점 줄어들어 붕붕은 어느새 구멍 안으로 거뜬히 달아날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 주변이 검정인 우주를 떠돈다고 상상했다. 우주가 하나도 낯설지 않았다. 어쩌면 꿈에서 본지도 모르지만 현실 같았다. 저절로 날다니. 기분이 사탕 맛이었다. 꿈이었다.

붕붕은 사방 벽이 막힌 방에 혼자 있었다. 통로는 언제나 지루했다. 두 팔을 모으고 손바닥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물방울이 닿은 손끝이 간질간질하고 등이 젖어 따끔거렸다. 신기하게도 파란 줄이 조금 옅어져 보였다. 누운 채로 엉덩이를 박박 긁고 머리도 흔들었다. 귀가 멍했다. 바닷가에서 파도쳤던 그 소리가 났다. 육지 바위에서 바다를 보던 그 꽃. 지금도 피었을까? “웩!” 짠 미역 냄새가 올라왔다. 붕붕은 코를 감싸 쥐었다. 또 꿈인가? 바다가 보였다. 푸르고 출렁이는 물결은 처음이었다. 붕붕은 두 팔로 가슴을 감쌌다. “아얏!” 팔을 꼬집어보니 아팠다. 아파서 깼다. 붕붕은 두 번 잠에서 깼다. 세상에, 두 번이나. 몸을 일으켜 기숙사 밖으로 나갔다. 태양이 중천에 뜬 아침이었다. 졸음이 와서 선 채로 눈을 감았다. 구름이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눈을 뜨기 싫어서 모른체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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